[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설국(雪國)

2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래전에 읽은 기사를 더듬어보면, 아주 오래전, 신문기자 한 명이 ‘왜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이 요원한가?’라는 의문을 품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유럽으로 탐방을 떠났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스웨덴의 문학아카데미에서 선정되기 때문에 우선 스웨덴의 국립도서관으로 갔다. 적어도 천만 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을 그곳에(참고로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050만 권 이상의 문헌이 있다) 한국과 관련된 책은 딱 3권이었다! 스웨덴 교포가 쓴 시집 1권, 기자가 알지 못하는 한국 소설가의 책 1권, 80년대에 간행된 한국 안내서 1권이 있었다고 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그 상황에서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는 일조차 어불성설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영국(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페인의 국립도서관 혹은 대학도서관에 한국과 관련되어 현지 언어로 번역된 책은 과연 몇 권이 꽂혀 있을까? 아마 2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6년에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받은 일은 온 국민의 경사이지만 그것 하나로 한국문학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2017년 여름에 남미 파라과이를 방문했다. 통역사와 함께 수도 아순시온의 한 서점을 찾았다. 수천 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리장 안에 예쁘게 놓여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IQ84>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양장본이 보란 듯이 진열되어 있었다.

파라과이의 한 서점에 진열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김호경

“한국에 관한 책이 있나요?”

서점 주인은 통역사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마침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잘 됐다는 표정으로 스페인어로 통역사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통역사는 난감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려주었다.

“한국은 핸드폰도 잘 만드는데, 왜 그리 청년들이 자살을 합니까?”

인도-일본-일본-중국-중국, 그 다음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흔히 ‘인도의 시성’이라 불리는 타고르(Robindronath Ţhakur)이다. 작품은 ‘신께 바치는 노래’라는 뜻의 <기탄잘리>.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시의 전문이 실려 있다.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1929년 일본을 방문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그 대신 써준 작품이 저 유명한 ‘동방의 등불’이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지만 “일본은 물질적으로는 진보했으나 정신적으로는 퇴보하고 있다.... 굶주린 일본은 지금 조선을 잠식하고, 중국을 물어뜯고 있다”라는 연설로 일본인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55년이 지난 1968년, 드디어 아시아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이 돌아왔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이며 수상작은 <설국>이다. 가와바타는 오사카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혹한 운명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단한 노력으로 작가가 되어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일본 사회의 큰 존경을 받았지만 1972년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헤밍웨이는 1961년 엽총으로 자살했다). 1968년 우리나라 1인당국민소득은 169달러였다. 노벨문학상은, 꿈은 꾸었을지언정 실현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일본에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김호경

그리고 또 26년이 지나 1994년, 일본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지지 않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라는 소설가였다. 대표작이랄 수 있는 <개인적인 체험>, <만연 원년의 풋볼>을 비롯하여 그의 작품 전집이 고려원에서 순차적으로 간행되었으나 소설의 기법이나 내용이 대단히 어려워 소설 자체가 큰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다만 일본에 두 번의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 때까지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을 뿐이었다. 그즈음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3,400달러, 한국은 12,300달러였다.

충격적인 일은 6년이 지난 2000년에 드디어 중국에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오싱젠(高行健)은 희곡 <영혼의 산>으로 중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뒤이어 2012년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유명한 모옌(莫言)이 상을 받았다. 그 다음은 어느 나라일까? 과연 한국의 차례일까?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 출처 : 유튜브 enjoyniigata

다음 주인공은 바로 그대이기를!

<설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2018년 한국인 754만 명이 일본을 여행했다. 매우 높은 수치이지만 도쿄를 둘러보고, 오사카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는다 하여 일본의 문화와 문학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설국>에의 몰이해는 “잘못된 접근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하지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온천 마을인 니가타현(新潟縣)의 에치고유자와(越後湯沢)를 배경으로 도쿄에서 온 무용 평론가 시마무라와 그곳에서 만난 여인 고마코, 여기에 요코라는 여인이 합류하면서 펼쳐지는 짧은 이야기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어렵지만 죽기 전에 한번은 읽어야 할 명작이다. 읽기 전에 일본의 문학,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 소설의 배경과 해설 등을 미리 조사하면 나름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왜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그 질문과 답을 찾으면 금상첨화이리라.

“노벨문학상을 꼭 받아야만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질문에는 은근히 노벨문학상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 폄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에 시작되어 118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보면 답이 나온다. 근대올림픽은 1896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31번이 치러졌다. 123년 동안 이어진 역사에서 “한국이 단 하나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면 어떻겠는가?”

매우 부끄러운 일일 수 있다. <설국>은 그 부끄러움에 답을 주는 소설이다.

● 더 알아두기

1.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일본 문학의 출발점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이다. 11세기 초에 쓰여진 작품으로 4대(代)의 왕으로 이어지는, 70여 년에 걸친 이야기이다. <전설의 고향>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으면 된다.

2.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라생문>(羅生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파계>(破戒),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사양>(斜陽) 등은 한번은 읽어야 할 명작으로 꼽힌다.

3. ‘아쿠타가와 문학상’은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1935년에 제정되었다. 1996년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는 <가족씨네마>로 이 상을 받았다.

4. 장편소설로는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풍도>(風濤),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인간의 조건>,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의 <불모지대>(不毛地帶)를 권한다. 한때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氷点)이 베스트셀러가 된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잊혀진 작품이 되었다.

5.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는 1950년부터 1967년에 걸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대하소설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망>(大望)으로 번역되어 판매가 되었으나 완독하기는 쉽지 않다.

6. 일본인의 심성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책으로는 호주계 미국 작가인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쇼군>(將軍), 아서 골든(Arthur Golden)의 <게이샤의 추억>을 권한다.

작가 나츠메 소세키는 천엔 지폐의 모델이기도 했다. Ⓒ김호경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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