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한일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된 징용자재판은 1997년 한국인 피해자들과 이들을 돕는 일본인 변호사와 시민운동가들이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지법에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시작됐다. 이 재판은 1, 2심에서 원고측이 패소했고,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패소를 최종 확정했다. 

원고들은 일본 법정에선 승소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2000년 5월 재판 관할지를 한국으로 바꿔 부산지법에 첫 소송을 냈으나, 7년 만인 2007년에 내려진 1심 판결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원고패소였다. 

부산지법 1심 재판이 지지부진하자 2005년 원고들은 재판 관할지를 서울로 바꿔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1, 2심도 원고패소였으나, 2012년 5월 대법원 파기환송이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씨앗이 됐다. 일본기업이 낸 재항고심은 원고승소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8년 10월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원고의 승소를 최종 확정했다. 

Ⓒ픽사베이

이 사건에 내재된 폭발성에 대해 역대 정부들은 나름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원고들이 일본과 국내 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던 무렵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적극 대처했다. 

먼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를 다룰 민관공동위를 구성해서 배상 대상의 범위 정립부터 시도했다. 공동위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대상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등 3개 분야로 특정했으나, 강제징용자 등은 배상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았다. 2007년에는 특별법을 만들어 이들에 대한 위로금 및 지원금 6,184억 원을 지급함으로써 일단락을 지은 듯이 보였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이 재판이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되자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바빠지게 됐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위안부 문제로 아베정부와 양보 없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징용자 문제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박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산업통산부장관 등과 의견을 조율한 뒤 양승태 대법원장과 협의를 통해 대법원의 판결이 가져올 외교통상적 문제들을 설명하고 신중한 판결을 요청했다. 양 대법원장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상고법원의 설치 필요성을 설명하고 대통령의 협조를 부탁했다. 그것이 이른바 사법적폐사건의 핵심인 ‘재판거래’의 내막이다.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사법적폐사건 수사로 대통령의 국정농단 혐의에 행정부의 사법부에 대한 개입이라는 삼권분립 위배 혐의 하나가 더해졌다. 양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 중 사법사상 최초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사법부와 협의한 것이나, 대법원장이 대법원의 업무 효율화를 위해 제도개선을 시도한 것이 죄가 되냐는 것이다. 검찰은 두 사람의 범죄혐의에 대해 사익추구 목적을 강조함으로써 대중의 공분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청구권협정 치적을 살리기 위한 거래였고, 양 대법원장이 추진한 상고법원도 대법원의 재판제도의 개선보다 국민의 3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시도로 몰아갔다. 

대법원의 징용자 재판의 결과가 한일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검찰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한가? 국익수호의 관점에서 볼 때 검찰의 시각은 박근혜 정부의 대처에 비해 근시안적이고 왜소한 게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았거나 그런 결과의 재판을 유도했다면 교과서적 원칙 뒤에 숨어서 국익을 도외시한 직무유기는 아닌가?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이 사건을 진두지휘한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을 국회의 동의 없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윤 총장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그러나 여야 어느 의원도 그 부분을 묻지 않은 채 위증여부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했다. 의원들의 침묵은 재판에 계류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추궁이 가져올 친일프레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여겨졌다. 

무엇이 국익이냐를 판단하기는 매우 복잡다기한 세상이다. 법으로만 따져서 국익을 지켜내기도 어렵다. 일본의 최고재판소의 판사 중에는 외교관이 포함된다고 한다. 국익을 판단함에 있어 법률지식만으로는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한 지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상대와 대적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했나? 불매운동, 의병, 국채보상, 죽창가 등을 되뇌이는 정부여당 사람들은 국민들을 공허하게 한다.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대법관은 “건국하는 마음으로 판결했다”는 자못 비장한 소회를 피력했었다. 한 개인의 과도한 이상주의적 판결로 비롯된 한일 무역전쟁을 보면서 '재판거래' 사건 또한 다시 평가돼야 하리라고 본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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