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파란색 검색창에 은퇴, 은퇴 준비, 은퇴 생활 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90% 이상은 돈(재무와 관련된) 얘기다. 그 중 80%는 각종 금융기관의 연금 관련 광고성 글들이다.

실제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은퇴한 월급쟁이들에게 은퇴 준비와 관련해 물어보면 10명중 9명은 돈과 관련한 얘기를 한다. 그만큼 은퇴 준비에 있어 돈(재무 계획)이 중요하고, 절박하지만 역설적으로 준비가 안되어 있고, 그로 인한 걱정이 크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역시 자본주의에서는 먹고 사는데 돈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아니 절대적이다. 그러니까 자본(돈)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난 돈 얘기를 메인 테마로 할 생각은 없다. 난 재무 전문가도 아니고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재무 지진아다. 그래도 은퇴 후 지금까지 나름 즐겁고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산다. 그렇다고 해서 은퇴 후 돈의 중요성, 재무계획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파란색 검색창을 치면 교수, 박사, 재무전문가들의 그럴싸한 글들이 차고 넘친다.
은퇴를 준비하기 위한 재무적 관심이라면 그런 글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모든 것에는 균형,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이란 말에서처럼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은퇴 생활에 있어서는 밸런스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삶 자체가 많은 요소들의 총합이기에 각 요소들의 최적의 조합과 균형은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위한 필수인 것이다.

은퇴 준비는 크게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재무계획이 경영학 같은 것이라면 비재무계획은 인문학 같은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닐지 몰라도 보다 근본적인 삶의 방향과 형태와 스타일을 결정하는데 1차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주로 이런 인문학적인,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아래 질문에 답해보라

Type A
Q 1. 당신은 은퇴 후 한달 생활비로 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Type B

Q 1. 은퇴 후 당신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Q 2. 당신이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후 그러한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세요.

Q 3.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에 소요되는 한달 예상 비용을 작성해보세요. 

Q 4. 그 비용을 적정, 최소, 최대 세가지로 정리해 보고 비용 레인지(범위)를 작성해 보세요.

두 가지 타입의 질문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얘기들, 즉 비재무적 계획이 무엇이고, 왜 필요하고, 왜 재무계획에 선행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질문들이다.

Type A에 대한 대답이 바로 250만원이다. 시중 금융기관 은퇴연구소의 최근 조사결과에 따른 은퇴 후 적정 생활비이다. 당신은 이 결과에 동의하는가? 난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아니 동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조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특성, 성향, 재무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후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 형태 등 개인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평균 인간에 맞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에 존재 하지도 않는, 통계상의 평균 인간에게는 맞을지 모르나 개성을 가진 실제 살아 있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월 250만원이 많을 수도 있고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간에 모든 비용들이 결과적으로 처음 계획했을 때 보다 실제로는 항상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월급쟁이가 은퇴 후 은퇴 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생활하려면 얼마면 가능할까?

더 정확히 묻겠다. 은퇴 전 세후소득이면 은퇴 후에도 은퇴 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 하면 No 또는 Never이다. 왜 그러냐고? 궁금하면 아래 글을 보라.

은퇴를 앞둔 직장인은 임원이건 부장이건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거의 헤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급여 외 회사로부터 받아온 것들을 생각해 보라.

법인 차량, 차량 유지비, 유류비, 골프 회원권, 특급호텔 피트니스 회원권, 통신비, 체력 단련비, 자기 계발비, 자녀 학비지원, 각종 경조사비, 의료비 등 수많은 복지 지원을 받아왔다.

은퇴 후에는 이런 모든 것들을 회사 돈이 아닌 내 돈으로 직접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일정 직급 이상이 되면 회사에서 법인카드를 준다. 말이 업무지 개인 일을 업무처럼 만들어서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법인카드 쓸 수 있는 친구 몇 명이 모여 매달 고급 음식점, 골프장, 룸싸롱에서 상호 접대한다. 물론 법인카드로…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팀장, 임원이 되면 많은 경우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활동(골프, 술 등) 경비는 대부분 접대를 받거나 접대를 하거나 법인카드로 처리하거나 자기 돈 안쓰고 해결한다.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팀장, 임원이 되면 자기 월급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는거다.

은퇴 후에는 이런 비용 모두를 자기 개인 카드로 직접 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최소 1.5배에서 2배 정도 더 든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대기업 임원 하다가 은퇴한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 중 하나가 은퇴 전 회사에서 내주던 비용들, 법인카드로 쓰던 것들을 자기 돈 내고 직접 하려니까 아까워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법인카드 쓰던 버릇 고치는데 2년 걸렸다고…

공짜는 좋은 거다. 그러나 영원히 공짜는 없다. 공짜에 오래 길들여 질 수록 그 버릇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이번 글의 결론이다.

은퇴 준비의 필요조건은 누가 뭐래도 재무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와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내가 은퇴 후 어떤 삶,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을 살 것 인지에 대한 생각과 계획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만 막연한 계획이 아닌, 나에게 맞는 현실적 재무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비재무계획이 은퇴 준비의 충분조건인 이유이다.

은퇴 준비의 필요충분조건은 재무계획과 함께 비재무계획도 준비하는 것이다. 비재무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이미 말했다.

1단계로 Type B의 질문에 답해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은퇴 후 삶에 대한 큰 그림(빅픽쳐)이 그려질 것이다.

2단계 큰 그림을 기반으로 각 영역별 디테일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우선은 현실성을 고려하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리스트로 다 나열해 보기 바란다.

이렇게 작성된 본인의 위시 리스트 혹은 버킷 리스트를 보면 몇가지 원하는 것 들이 하나로 그룹핑될 수 있고 서로가 대체될 수 있고 때로는 한눈에 보기에도 현실성 없는 공상이라고 느낄 것이다. 비슷한 것끼리 묶고 터무니 없는 것은 과감히 지워라.

3단계 2단계에서 그룹핑된 것 중 비용이 큰 카테고리(예를 들자면 주거비 같은)별 질문 리스트에 답해 보자 

-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살 것인가? 자가, 전세, 월세 중 어떤 형태로 살 것인가?
==è 주거 카테고리

- 어떤 여가 생활, 취미 활동을 얼마나 자주 할 것인가?
==è 여가 활동 카테고리 

4단계 주요 카테고리의 월 비용을 계산하고 모든 카테고리 비용을 합산하라. 그것이 평균인으로서의 월 평균 적정생활비 250만원이 아닌, 개성을 지닌 실제 살아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월 평균 생활비가 될 것이다.

5단계 결단의 순간이 왔다. 당신의 월 소득 내에서 가능하다면 그냥 하면 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소득이 되는 은퇴자를 난 한번도 본적이 없다. 최소한 월급쟁이로 은퇴한 사람들 중엔 말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월급쟁이가 아니다. 자본가이거나 전문직이다. 아니면 유산을  많이 물려 받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산속에 사는, 모든 의식주를 자연에서 공짜로 얻는, 그래서 생활비가 전혀 안 드는, 종편 MBN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러나 멸종 직전인 그 이름도 거룩한 '자연인'이다.

당연히 소득이 부족할 것이다. 이제 리스트 중 불필요한 것의 우선 순위에 따라 예산에 맞을 때까지 하나씩 지워 나가라.

지울 것도 없이 250만원에 딱 맞는다면 당신은 대한민국 평균 은퇴인이다.

반 이상 남았다면 당신은 참 욕심이 없거나 할 줄 아는 게 없거나 삶의 의욕이 없거나 셋 중 하나이다. 

남아 있는 게 반도 안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정상인 파이팅!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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