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일요일 아침 완행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고 있었다. 1시간이 넘는 여정이기에 목 베개, 읽을 책 한 권까지 준비해서 느긋하게 자리에 몸을 뉘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단단한 체격에 검정색 옷을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거칠어 보였다.

할머니 두 분이 앞자리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운전 중에도 신경질적으로 뒤를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는 불안해졌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시골길에서 휙 하고 코너를 도는 등 거칠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할머니들의 수다는 한층 흥을 더해 클라이막스를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뭔가 터질 것을 예감했다. 예전에는 한국에 넘치던 정서가 ‘정’이었지만 이제는 ‘화’가 된 지 오래다.

“아씨! 좀 조용히 좀 하이소!” 딸꾹질이라도 하듯이 덜컹하고 버스가 섰고 운전석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한 할머니가 급히 사과했다. 이 “미안합니다.”로 대화가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른 할머니가 “버스 타면 좀 떠들 수도 있지.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면서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말에 버스 기사는 “그럴 수가 있다니요? 지금 버스 출발하고 20분 동안이나 떠들었잖아요!”라며 흥분했다. 

할머니는 마지못해 “미안합니다.”라고 하더니 또, “저 아저씨 예전에도 뭐라 하더니. 또 그러네.”라는 궁시렁으로 버스 기사의 화를 돋우었다.

이제 운전기사는 “또 그러는 게 아니라. 안 떠들어야죠! 운전하는 데 집중을 못 하잖아요!”라며 자리에서 튀어 오르려고 했다. 

이에 당황한 할머니는 “아니고 마. 내가 미안합니다. 미안해.”하고 대화를 끝내는 듯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또 “버스 타면 떠들 수도 있지.” 하면서 한 마디 더 붙였다. 

이제 버스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왜 반말합니까! 왜 반말해! 내가 버스 운전하니까 만만하게 보여요?”라며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었다. 

할머니는 “아니, 미안하다니까.”라고 했다가 그 말에 버스 기사가 물러나자 역시나 또 한마디 덧붙였다. 요지는 너 같은 아들이 있다, 였다. 

이에 다시 버스 기사는 “아니! 그럼 아들 친구들한테 다 반말합니까!”라며 격하게 따졌고, 할머니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가 반말로 구시렁거렸다가, 다시 미안하다고 했다가 버스 기사가 돌아서기만 하면 다른 말로 구시렁거렸다. 

왔다 갔다 싸움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됐다가 이렇게 10분여가 지났다.

Ⓒ픽사베이

종교전쟁 다음은 젠더전쟁 

IS를 주축으로 한 종교전쟁이 한창이던 때 유럽에서는 서서히 다가올 젠더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괘념치 말거라”로 정치권에서도 수류탄이 터지더니 대학가에는 “너 정도면 괜찮은 얼굴” 같은 따발총이 난발한다. 

일찍이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저서에서 남자는 여자가 남자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리라고 그릇된 기대를 갖고 있다, 여자 역시 남자가 여자와 같은 식으로 느끼고 말하고 반응할 거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던 송송커플도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나는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젠더 전쟁에 결국 승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존 그레이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받고 싶은 것은 관심, 이해, 존중, 헌신, 공감, 확신이다. 반면 남자가 여자에게 받고 싶은 것은 신뢰, 인정, 감사, 찬미, 찬성, 격려이다, 라고. 

독립 100주년에 60년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남북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하고 싶은 말,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젠더전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