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청년칼럼=이하연]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환경이 이토록 빨리 바뀐 적이 없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변이 낯선 것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더라.

매일같이 출근했던 장소가 바뀌었다. 고민 끝에 다시 취준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이직을 준비했고 곧이어 성공했다. 전 직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공간이었다. 새로운 사람들 틈에 섞여 일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젖어들었다. 적응해야 할 것 투성이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동기들과 팀원들이 큰 힘이 됐더랬지. 여러분 고마워요.

휴대폰을 샀다. 고장도 안 났지만 약정도 안 끝났었다. 늘 보급형 휴대폰만 썼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신 휴대폰이 갖고 싶어졌다. 그 덕에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먼저 휴대폰 케이스. 이젠 길거리에서도 휴대폰 케이스를 살 수 있게 됐다. 케이스 파는 곳을 자꾸만 흘깃거린다. 아, 참고로 보급형 휴대폰 케이스는 구매하기 어렵다. 그리고 풍경. 풍경을 두 번 보게 됐다. 화질이 좋으니 자꾸만 찍어보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인가. 잠깐 멈춰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를 언제쯤 해 봤으려나. 잘 샀다, 칭찬한다.

아주 많이 좋아했던 사람과 머나먼 이별을 했다. 이별을 직감했으면서도 이별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어디 뭐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고 말수는 적어졌다. 나중에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이별 직후. 이별했음을 받아들여야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별한 사람처럼 행동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슬픈 건 맞는데 24시간 내내 슬프지는 않았다. 때로는 웃음도 나오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넋을 놓고 걷기도 하고 눈물도 좀 흘렸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감정의 기복이라는 게 이건가보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이 나 대신 많이 울어줬다. 그게 큰 위로가 됐는지 아빠는 이제 꿈속에서 웃기만 한다. 이제 아프지 마세요. 걱정도 하지 마시고요. 다 괜찮아요.

이사를 왔다. 이사를 처음 온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설렜다. 짐도 많이 줄었고 아늑한 보금자리도 생겼다. 처음 받아본 월급으로 커텐도 직접 달아보고 침대 커버도 씌웠다. 노르스름한 조명까지 켜두니 그런대로 볼 만하다. 글 쓸 조건은 다 갖춰진 것 같은데 거의 3개월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낸 탓도 있고, 게을러진 탓도 있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노트북을 후 불었다. 오늘은 다행히 몇 글자 끄적일 수 있게 됐다. 새 집에서 처음 쓰는 글이라니. 반가우면서도 괜히 부끄럽다. 앞으로 잘 부탁해.

바뀌었다고 생각했던 환경들이 차츰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익숙해진 것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회사에서 만났던 선배와 헤어짐을 앞두고 있고, 기뻐서 샀던 휴대폰 케이스는 이미 깨져버렸다. 공포로 둔갑한 슬픔 대신 이상한 애틋함이 생겨나 당황스럽고, 월급을 두 번 세 번 타니 또 다른 커텐을 달고 싶어졌다.

주변은 항상 낯설었다. 집중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여겼을지도. 김점선의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중할 수 없는 인생은 아무리 길어도 엿이다.”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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