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논객칼럼=김철웅] 번지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걸 ‘역대급’으로 키울 수 없을까. 일본 측 반응을 접하면 특히 그렇다.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 불매운동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며 이번 불매운동도 실패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4차례 불매운동이 있었으나 흐지부지 끝났으며 오히려 시장 점유율이 오른 품목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지”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 말에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불매운동을 ‘뭘 모르고 저지르는’ 반일 민족감정의 표출쯤으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역사적으로 기억할만한 불매운동들은 단순한 감정 분출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1905년 시작해 1911년까지 진행된 인도의 ‘스와데시(힌디어로 모국)’는 국산품 애용 및 영국 상품 배척 운동이었다. 그 결과 토산품의 수요는 증가하고 영국 상품 판매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1920년대 한국에선 물산장려운동이 벌어졌다. 일제의 경제 수탈에 맞서 펼친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이다. 구호는 ‘조선사람 조선으로’, ‘우리 것으로만 살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친일 세력의 방해로 쇠퇴하고 말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미국 등 80개국은 이듬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그 보복으로 소련 등 14개 나라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불참했다. 스포츠 행사에 국제정치적 요인이 개입한 경우이다. 한국처럼 시민들이 공동으로 특정 국가의 상품을 불매하고 나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SNS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이미지

앞서 말했듯 일본에선 전례로 보아 ‘그러다 말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도 은근히 동조하는 분위기다. 한국당은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선 뒤로 줄곧 정부 간 협상을 하라면서 자기 당에 ‘친일파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전망대로 될까.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다. 우선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를 한 이유부터 모호하다. 일본 정부는 앞서 수출규제가 안보상의 문제라고 했다가 강제징용 배상 때문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안보와 역사 문제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이런 분석도 있다.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변국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때릴 상대는 한국뿐이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개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아베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 마당에 시민들이 자진해 불매운동을 철회한다는 건 이치에 안 맞다.

이것은 아베 정부의 극우적 성격과 관련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한계 때문이다. 협정에는 강제징용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에 관한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징용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신일철주금 강제징용자 이춘식 할아버지 등 수많은 사례가 일본의 불법행위 때문이었고, 피해 배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효과적인 불매운동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방식의 불매운동에 대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한 해 750만 명씩 일본을 찾는데 이 숫자가 줄면 일본 농수산물 소비는 물론 여행사와 숙박업 모두 타격을 입는다”면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불매운동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방일 한국인은 753만9000명, 방한 일본인은 292만1000명이었다.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불균형이다. 2010년대 들어 이런 역전이 시작됐다. 한 누리꾼은 “일본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한국 사람들은 부유해져서 나타난 결과”라고 풀이한다(한국사회의 양극화 심화는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요즘 10~20대는 일본이 한국보다 잘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1~2년간은 일본에 여행을 가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불매는 싸움이 아닌 평화를 위함이다.” 며칠 전 평택 청소년교육의회 학생들이 내건 구호이다. 학생들은 결의문에서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난, 비판하지 않는다”며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장기적인 긍정적 관계를 맺어야 함을 잊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런 열린 자세라면 역사적 불매운동이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한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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