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사람들은 여행 가서 좋은 풍경을 보면 꼭 사진을 찍어온다. ‘남는 건 사진뿐이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순간을 추억한다. 풍경 외에도 가족, 친구, 연인과 사진을 찍어서 좋은 시절, 기쁘고 행복한 날을 기억하려 한다. 특히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가 발달해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기 편하다.

다양한 카메라 앱이 쏟아지며 셀카를 많이 찍는 추세이기도 하다. 약간의 보정 기능이 탑재된 셀카 모드로 사진을 찍으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주변 친구들은 “야, 그거 진짜 네 얼굴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초를 치긴 하지만 상관없다. 무엇이든 자기만족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저 운 좋게 건진 괜찮은 사진 한 장으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할 뿐이다.

Ⓒ픽사베이

그렇게 대다수가 사진 찍는 삶에 익숙해졌지만 우리 집에는 사진을 절대 안 찍는 사람이 있다. 할머니는 내가 카메라를 들이밀면 경기 일으키듯 도망치신다. “주름 많고 쭈글쭈글한 사람 찍는 거 아니다”라며 매번 손사래친다. 정말 손녀딸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할머니는 내가 본 할머니 중 가장 동안이었다. 올해 초 같이 병원에 갔을 때 접수처에 앉은 간호사가 “어머, 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네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자리를 피한다. 얼마 전부터는 엄마마저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해서 난감하다. 엄마는 롱샷이나 풀샷, 전신 샷으로 멀리서 풍경과 찍거나 단체로 찍는 경우가 아니라 단독 샷 혹은 셀카일 때 사진 찍는 걸 진심으로 불편해했다. 할머니와 엄마 모두 세월이 흘러 주름이 늘고 예전과 지금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진을 아예 안 찍자니 기쁜 순간을 추억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니 그저 가만히 그 곁을 지킬 뿐이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졸업 전 버킷리스트를 실천하자는 마음으로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벚꽃이 필 때 출사를 나가서 인물 사진, 풍경 사진 등을 찍었다. 종강할 때쯤에는 간단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진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찍힌 사진이 가장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에는 습관처럼 반듯한 미소와 갸름해 보이는 얼굴각도 등에 신경 쓰며 사진을 찍었다면 지금은 너무 활짝 웃어서 광대가 터질 것 같고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얼굴로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 그리고 괜히 그런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고 ‘그때 참 즐거웠지’하고 회상할 수 있어서 마음에 더 와닿는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진은 꼭 기억해야 할 순간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 않나 싶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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