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흔치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머무는 절 주지스님이 아침 일찍 대웅전 뒤 산자락을 열심히 파고 있었습니다. 대체 거기 뭘 묻어 놓았길래 아침부터 삽질이실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연은 그랬습니다. 절에서는 얼마 전 나무를 몇 그루 베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참나무 서너 그루가 갑자기 시들더니 죽어버린 탓입니다. ‘참나무 마름병’이라는 돌림병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죽은 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게 보기 좋지 않아서 지자체에 문의했더니 무상으로 베어준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나무를 베던 중 일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지자체가 작업을 의뢰한 산림조합 측에서 나무를 몇 그루 더 베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대웅전 가까이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는데, 그들을 위험수목이라고 한답니다. 태풍이나 산사태가 일어날 경우 가옥을 덮칠 만큼 가까이 서있는 나무라는 것이지요. 그런 경우 신고만 하면 합법적으로 벨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장비가 거기까지 올라간 데다, 깔끔하게 정리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픽사베이

난감한 일은 며칠 뒤 생겼습니다. 한 여인이 주지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오래 전 어머니의 유골을 빻은 유분(遺粉)을 대웅전 뒤 나무 밑에 ‘밀장(密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남모르게 어머니 무덤을 만든 것이지요. 무덤자리를 구하거나 공원묘지를 살 경제적 능력이 안됐을 수도 있고, 밀장을 해서라도 부처님 품안에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난 뒤 외국에 나가 살았다지요. 가끔 귀국해서 봉분 없는 산소에 다녀가고는 했고요. 그때마다 키 큰 나무가 위치를 가르쳐주고는 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꿈자리가 무척 사납더라지요. 그래서 와봤더니 산소를 알려주던 나무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 주지스님이 왜 삽을 들고 나섰는지 짐작이 가지요? 하지만 스님은 그날 유골함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요. 그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못 찾겠다”는 한 마디로 외면할 수 없었던 스님은 결국 중장비를 불러 땅 속을 촘촘하게 뒤졌습니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한 끝에 유분을 담았던 도자기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파편들을 모아보니 이미 깨진지 오래된 뒤였습니다. 작은 주머니도 함께 있었는데 혹시 유분이 들었을까 싶어 잘 수습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발견된 것들을 빠트림 없이 모아서 그 여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장이라는 장례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오래 전 중국에 갔을 때 들었던,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중국에는 전봇대 밑에 시신이 많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무덤을 못 만들게 하면서,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그곳에 부모의 시신을 묻는다는 것이지요.

중국은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라고 유언한 것을 계기로 화장법(火葬法)이 만들어졌습니다. 너도 나도 매장을 하다 보니 묘지를 쓸 땅이 부족해지면서 나온 고육지책이었지요. 하지만 법이 만들어졌다고 매장에 대한 염원이 금방 사라질까요? 법의 눈을 피해 부모의 시신을 몰래 묻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봇대 밑 매장’이 나온 배경이지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인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육지 면적 960만㎢로 한반도의 44배에 달하는 땅덩이를 가진 중국이 더 이상 묘를 쓸데가 없다는데, 좁은 땅에서 어깨 부비며 사는 우리라고 묘지 자리가 남아돌 리 없지요. 매장 문화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긍정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게 묘지 매립 대신 자연장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요. 참 다행입니다. 그런 변화를 뒷받침해주는 통계도 있습니다. 최근 경기도가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4%가 매장보다는 화장을 원했다고 합니다. 또 화장을 원하는 응답자 중 39.4%가 유골처리 방법으로 자연장(화장 유골을 나무나 화초 주변 등에 묻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웅전 뒤에 어머니를 밀장했던 그 여인도 일종의 자연장을 한 셈이었습니다. ‘밀장’이라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 그 뒷얘기를 전하고 ‘유골함 찾기’에 얽힌 이야기를 마쳐야겠습니다. 그날 주지스님이 그 여인에게 전해준 작은 주머니 속의 내용물은 유분이 아니라 숯이었다고 합니다. 습기를 덜기 위해 함께 넣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육신은 영원히 스러지고 숯만 남은 셈이었습니다. 좋게 해석하면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자식으로서는 안타까움이 컸겠지요.

저 역시 다른 의미에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를 부처님 품에 모시고 싶으면 유분을 슬그머니 뿌리지, 왜 밀장까지 했을까. 그 역시 뿌리 깊은 매장 선호 때문일까? 물론 제가 답을 낼 일은 아니지요. 다만 그 일을 계기로, 죽음이 남기고 가는 육신을 어찌하는 게 좋을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저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짧으니까요.

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죽은 뒤에 그깟 무덤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