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실상 일본을 천하 통일했다. 그는 곧바로 교토에 이조성을 짓는다. 성안에는 수천 명의 사무라이와 궁녀들이 근무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들이 쓸 식자재와 옷, 칼, 식기 등의 생필품을 조달하기 위해 시장을 개설한다. 바로 오늘날 교토를 대표하는 니시키 시장이다.

일본 최대, 최초의 공용 시장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일본 각지에서 명망 있는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1617년 시코쿠의 에히메에서 생선 장사를 하던 이요마타도 생선과 초밥을 팔기 위해 니시키 시장에 상점을 열었다.

니시키 시장에는 고등어 초밥으로 유명한 이요마타가 1617년에 개업해 지금껏 영업 중이고, 주방용 칼 등 부엌용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아리쯔쿠가 1619년에 개업했으며, 두부 피(皮)인 ‘유바’로 유명한 가라나미기치가 1790년, 여관이자 가이세키 요리점인 긴마타가 1801년 개업해서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그중 이요마타는 4개와 조그마한 방 하나가 있는 아주 작은 가게다. 메뉴의 종류 역시 다양하지만 이 가게의 18번은 역시 사바 스시(고등어 초밥)다.

이요마타의 하루 손님은 약 60~70명 정도로 명성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대신 고등어 초밥을 싸 가는 손님이 하루에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꽤 많다. 고등어 초밥 1인분의 가격은 1,670엔이다. 다른 가게들이 1,300엔 정도를 받고 있으니 그보다는 400엔 가까이 비싼 것이다. 가격이 비싼 것은 그만큼 좋은 재료를 쓰고 맛에 자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맛이 꽤 좋아, 나는 올해에만 일곱 번이나 이 가게를 찾았다.

20대 사장인 도요타 마타시게에게 400년간 고등어 초밥을 만들어 팔았으니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했더니 ‘궁하지 않게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돈 좀 벌었다는 얘기다. 지점도 많겠다고 넌지시 물었더니 이 가게 하나가 전부란다.
 
400년 관록이 있으니 프랜차이즈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왜 가게 하나만 운영하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프랜차이즈를 내자는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았단다. 그러나 언제나 그의 대답은 ‘NO’였다고. 프랜차이즈를 해서 만에 하나 상한 고등어 초밥이나 맛이 없는 초밥을 고객에게 제공했을 경우, 손님은 실망하게 되고 실망한 손님이 하나둘 발을 돌리면 400년 전통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개의 화살을 갖지 마라.” 교토 상인의 33계명 중 하나다.

화살이 두 개일 경우, 하나의 화살이 실패했을 때 또 하나의 화살이 있으니 그것으로 명중시키면 된다는 자만심을 가져서 첫 번째 화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요타 씨 역시 가게를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 한 가게가 망하더라도 또 다른 가게가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자만심이 생겨 일에 충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교토 상인을 가리켜 천년 상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교토에는 천년 이상 된 가게 6개가 영업 중에 있고, 200년 이상 된 가게는 무려 1,600개에 이른다. 그들의 대부분은 ‘지속 경영’, 즉 대를 이어가면서 한 가게에만 충실해 온 상인들이다. 그에게 가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밤이고 낮이고 연구.” 그의 대답이었다.
 


골프도 안 치냐고 물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종업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준비를 하고 밤 12시나 되어야 잠들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단다.

이튿날 아침 6시, 니시키 시장의 새벽 취재를 위해 그곳을 찾았을 때 이요마타 가게의 셔터 문이 정확하게 6시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교토 천년 상인은 괜한 말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무서운 자기절제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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