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희의 현실경제 속으로]

[논객칼럼=양원희]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금통위가 전격적으로 금리를 0.25%p 내렸다.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한일 무역규제문제 등을 우려해 시중에서 예상하는 인하시기보다 앞서서 금리를 인하했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한일 무역마찰을 대응하고 경기하강에 대응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했기에 부담없이 인하했다. 갑작스런 금리인하였지만 시중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금융시장에서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금리가 충분히 낮은 수준이고,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이 존재하고 있어서 금리를 인하해도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을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부동산 시장에서 심리적 반등효과와 부동산 상승기대 분위기가 조성되는 성과(?)는 얻었다.

연말에 추가적인 금리인하도 예고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경기조절기능을 이미 상실했고, 우리경제의 침체도 금리수준의 여하에 의해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한국은행은 우리경제에 대한 다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고 단기적이고 대증적인 정책수단으로 금리인하를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섣부른 금리인하는 경기부양 효과는 없으면서 가계부채 급증과 투기자금 급증으로 부동산시장 교란 등 부작용만 나타낸다. 이는 향후 경제운용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경제위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 우려된다.

Ⓒ픽사베이

금통위는 금리인하를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주열 총재 취임 이후,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2.50%에서 1.50%까지 1%p 내리는데 10개월 밖에 안 걸렸다. 반면에, 2016년 6월 이후  1.25%로 유지하면서 2017년 11월 0.25%p를 올리는데 1년 5개월이 걸렸다. (미국은 0.25%에서 1.50%까지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그 후에도 미국은 2018년 11월 2.50%까지 1%p나 올리는 동안에도, 한국은행은 1년을 버티다가 0,25%p만 올리는데 그쳤다.

한은은 금리인하에는 매우 신속하고 과감한데,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시점에는 과도하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도록 풀려 부동산시장이 폭등하고, 금융시장이 불안하여 경제에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저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돼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이미 금리인하의 효과가 상실되어 금융정책 자체가 무용한 상황이 되었다.

이와 같이 금리인하를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의 멤버가 기업에 유리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임을 의심하게 된다. 경제주체 전체를 대표하여 금리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기 보다는,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여 금리결정을 하는 것은 아닌가. 금리는 낮을수록 좋다라고 하는 편향성을 갖고, 부동산 급등의 부작용이나 부의 분배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소외계층을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기업은 투자를 확대하고 가계부문은 소비를 증가시켜 자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된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통화가 풀려 실물경제로 흐르게 되어 경기가 활성화되는 경로가 진행된다. 즉, 금리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브릿지 역할을 하면서 통화의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오랜 기간 저금리가 유지되었고, 과잉유동성 상태가 지속되면서 금리가 자금의 흐름을 조절하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지금은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유동성이 자금시장에서 실물경제로 흐르지를 못하는 구조이며 자금시장에서 맴돌거나, 부동산 투기 등으로 투기자금화 되어 경제운용에 부담만 주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기업들의 투자감소는 금리수준이 높아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가계부문의 소비감소도 금리가 높은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1100조원이며 10대 재벌은 700-800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리가 높아서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계부문은 이미 부채가 1500조를 넘어서서 원리금 상환압박이 커서 금리를 0.25% 내린다고 해도 소비수요를 늘릴 여력이 없다. 가계부채 1500조에 대한 연간 원리금 상환금액이 130조로 추정되는데, 이는 GDP의 7.2%로 가계소비를 제약하는 부담이 되고 있다. 2018년 가계부문의 저축률이 6.9%에 불과한데, 저축금액 전체를 원리금상환에 사용해도 현금여유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소비가 진작될 가능성이 없다

이미 시중 통화량(M2기준)은 올해 5월 기준 2771조원으로 작년 GDP 1782조와 비교할 때 충분히 풀려있다. 금리를 인하해도 실물경제의 투자와 소비수요가 증가되고 통화의 유통이 활발하게 하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가계의 과도한 부채부담 등과 맞물려 금융시장은 심각한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유동성 함정은 이주열총재 취임 이후 4-5년간의 무분별한 금융완화정책으로 인한 결과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을 하지 않고, 경기침체에 대응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분을 내세워 이미 기능을 상실한 금리의 경기조절능력을 ‘쉽게’ 시험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경제의 문제해결은 금리인하에 있지 않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투자로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해야 한다. 가계부문의 과도한 가계부채부담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부동산 버블을 어떻게 잠재우고 부채규모를 축소해 나갈 수 있는 가에 금융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업과 가계의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금리인하가 아니라 우리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과감한 메스를 가해야 한다. 단기적이고, 효과도 담보되지 않는 땜질처방인 금리인하를 더 이상 만지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은행은 과거실책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면서, 금리인하 같은 평탄한 길이 아닌, 구조조정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원희

 (주)아이브인베스터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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