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논객칼럼=박정애]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美)’라는 것이 있다. 얼핏 보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실용성, 효율성 등 현실적인 측면에서 ‘시(詩)’ 만큼 무용(無用)한 장르가 있을까. 하지만 이 쓸모없음이 어떤 고귀한 쓸모를 만들어내는지 한 시인의 삶을 통해 말해보고자 한다.

그녀는 십여 년 전 혼자 마라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섬이 맺어준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장면 집을 운영한다. 이러한 사연을 나는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시인과 낚시꾼’이라는 제목의 그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낯익었다. 설마, 했는데 화면 아래 뜨는 이름을 보니 정말 내가 아는 ‘류’ 시인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제주도 여행을 간 김에 마라도까지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인과 낚시꾼’이란 간판의 자장면 집에 들어갔는데 정말 그녀가 자장면 면발을 뽑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초췌한 모습으로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느낀 것처럼 그다지 낭만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와 내 남편도 초록색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톳 자장면을 시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그녀의 남편은 부인의 지인에게 남다른 대접을 하고 싶었는지 자신이 직접 낚시 한 생선회까지 한 접시 내 주었다. 자장면보다 더 값나가는 서비스였다.

Ⓒ픽사베이

그 때는 유명한 개그맨이 마라도까지 배달통을 들고 가서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하는 광고 멘트가 대유행을 한 덕분에 마라도에 가면 누구나 자장면을 먹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실제로 도심의 어느 먹자골목 못지않게 자장면 골목이 형성돼 있었다. 그녀는 힘들긴 해도 돈은 많이 번다며 살짝 웃어보였다. 톳이 몸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는 말도 했다. 돌아온 뒤 전화나 문자라도 한 통 남길까 했지만, 그럴 정도로는 친분이 없던 사이이기도 했고 새삼스럽게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는 인사말 하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논술 수업을 위해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관련 자료를 찾다가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했다. 그녀는 제주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오히려 정 반대였다. 그 사이 그녀는 몹시 가난해져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녀에게 있었던 사연들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GMO 농산물의 위험성을 알게 된 뒤 더 이상 수입산 밀가루로 자장면을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장면 한 그릇에도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싶었던 그녀는 수입산 밀가루보다 몇 배나 더 비싼 국내산 밀가루만을 고집했다. 카라멜 소스 대신 직접 우리 밀, 우리 콩으로 춘장을 만들어 썼다. MSG를 비롯한 여타의 식품 첨가물이나 가공 양념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청정한 자연주의 자장면을 만들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났고 가게 문을 닫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마라도에서 평택으로, 그리고 마침내 다시 제주 시내에 자연주의 자장면, 아니 시인의 자장면 집을 개업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돈보다는 ‘사람들의 몸에 시를 새긴다’는 신념으로 운영하다 보니 수익은 늘 그럭저럭인 듯 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녀는 요식업으로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두 눈을 비비고 저항의 기지개를 켤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 그 무용(無用)함이 위대한 힘을 낳은 것이다.

현 정부는 2022년까지 밀 생산량을 9.9%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000년 0.1%에서 2017년에 1.7%까지 올라갔던 우리 밀 생산량은 올해 또 다시 자급률 0.7%로 떨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수입 밀은 kg당 300원이 안 되는데 우리 밀은 최소 1천원 이상 나간단다.

우리 밀은 겨울에 재배해 봄에 수확하기 때문에 농약을 할 필요가 없고 긴 운반 기간 때문에 사용할 수밖에 없는 방부제와 표백제도 뿌릴 필요가 없어서 안전하다. GMO 식품의 위험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도 국회에서는 ‘밀 생산 법률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핑계는 당연히 실용성, 효율성 같은 이유들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사안을 중시하는 그들에게 시를 쓰지는 못 하더라도 읽어보기라도 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매일 꾸준히 읽다 보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美)를 깨달을 수 있을는지.

언젠가 다시 제주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내 몸에도 그녀의 시를 새기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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