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I

세상 떠난지 25년 된 스승 A선생님은 지금으로부터 80년전, 대학 졸업반 때 동경에서 옥고를 경험했다. 건실한 조선유학생이고, 특별히 사상적 배경이나 전과도 없었는 데다가 고작해 봐야 반일감정을 의심케 하는 정도의 ‘깍뚜기와 따꾸앙’이란 제목의 글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서 선생님은 함께 한 유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과 잠깐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오히려 선생님은 그 사건 자체보다 자신 전공이 경제학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일본공산당과의 연계를 의심 받지 않을까 걱정 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당신 말로는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아는 것도 없고, 문제의식도 별로 없어' 수구한량(守舊閑良) 으로 오해(?)받아 무사했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간다(神田)교회에 같이 다니던 30여명의 한일 대학생들이 잡혀가 길게는 수개월씩 옥살이를 했으니 사건의 본질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큰 사건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픽사베이

II

30여년전 일간지에서 ‘김치와 우메보시’란 박스 기사를 읽게 됐는데, 그 글을 보면서 선생님이 대학생시절에 썼던 문제의 글 ‘깍뚜기와 다꾸앙’이 떠올랐다. 이 글이 실린 대학생들의 문집, 神田文輯을 찾아 읽으며(무려 80년 된 책이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부숴졌다. 코팅이라도 해놨어야 했는데 이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흐른 탓에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인지 선생님의 ‘깍뚜기와 다꾸앙’은 가슴에 와닿질 않았다. 오히려 동아일보(1989년 10월 31일자)에서 본 ‘김치와 우메보시’가 머리에 박혔다. (1986년 6월 14일 경향신문의 후속 기사)

III

그 줄거리는 이렇다.

1968년 목포에서 한 일본여인의 죽음을 시민장으로 치렀다. 일본명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 한국명 ‘윤학자’라는, 56세에 타계한 과부 여인. 그는 목포에서 ‘고아의 어머니’로 불려졌던 사람이다.

그녀는 7살 때 조선총독부 관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 와 자랐다. 목포여고 영어교사이던 시절, 거지대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아원장 ‘윤치호’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고아들을 위한 음악 자원봉사자가 된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결국 결혼을 했다.

‘기(基)’라는 아들까지 낳았는데 이 아들은 고아들과 똑같이 자고 먹으며 자랐다. 해방이 되자,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미움과 보복을 피해 아들만 데리고 부모님의 집인 일본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그는 고아들과 남편을 잊지 못해 다시 목포로 돌아오게 됐다.

6.25가 터졌다. 원장 윤치호는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궁핍한 전란통에 고아들을 거느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그렇게 가난한 세월을 딛고 1968년, 임종에 이를 무렵 ‘지즈코’는 점점 한국말을 잊어 갔다. 본능적으로 뇌리에 박힌 일본말을 되풀이하고 김치 대신 어려서부터 입맛을 들인 ‘우메보시’(매실 장아찌)만을 찾았다. 아들은 그때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일본인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안희진

IV

세월이 지나 1980년대. 아들 윤기씨는 신문에서 일본에 사는 한 한국노인의 비극적인 사망기사를 읽게 됐다. 홀로 사는 재일한국인 노인이 외롭게 죽었으나 한달 가까이나 이웃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 기사를 본 윤씨는 어머니 지즈코를 떠올렸다. 혹시 그 불쌍한 노인도 죽을 무렵 한국말을 하고 싶고, 김치가 먹고 싶지 않았을까? 그같은 비극을 막고 소박한 꿈을 채워주는 ‘노인 홈’을 지을 수는 없을까?

아사히(朝日)신문에 그런 제안을 투고했다. 독자들이 크게 호응해서 오사카 두곳에 ‘고향의 집’(90명 수용) 준공을 보게 됐다. 김치와 우메보시를 골라먹을 수 있는, 가요와 엔카를 모두 부를 수 있는 노인 홈이었다. 윤씨의 희망은 도쿄를 비롯해 일본 각지에 10여곳 ‘고향의 집’을 여는 것이었다.

기사시리즈는 2001년 3월 1일, ‘고베 고향의 집’ 준공식 행사 때까지 계속된다. 시장과 중의원을 비롯해 재일동포 등 300여명이 모였다. 이 준공식에서 목포 공생원생들이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라는 우리의 동요를 부를 때 교포들은 눈시울을 적셨고,

발밑을 지켜보렴
이것이 네가 걸을 길
앞을 보렴
저것이 너의 미래
꿈은 언제나 하늘 높이 있어
이루지 못할까 두렵네
그래도 쫓아 갈 거야
미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미래’라는 제목의 일본 대중가요를 일본 참석자들이 부를 때, 참석자 모두는 그 고아들의 미래, 그 노인들의 미래를 기원하며 오래 오래 박수를 쳤다.

V

80년전 스승님의 ‘깍뚜기와 다꾸앙’과 30년전 지즈꼬의 ‘김치와 우메보시’가 겹쳐지면서 오늘의 한일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개헌-전쟁을 향한 아베 정권 타도!"
-대한국 수출제한을 즉시 철회하라!
(한국민의 반(反)아베투쟁을 지지하는 일본 치바(千葉)현 철도노조 '도로치바'의 긴급 성명서, 2019.08.01)

일본 시민단체와 보통시민들의 외침처럼 오늘의 한일문제가 아베와 그 일파의 폭주에서 비롯되어 오늘의 양국위기를 가져왔지만, 양국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정신, 역사의식이 이를 능히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굳은 동반자가 될 것을 믿는다. [논객칼럼=안희진] 

*2016년 10월2일 히로시마주재한국총영사관 주최 Korea Week 행사 한국영화제에서 다우치 여사 생애를 그린 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상영한 바도 있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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