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준의 신드롬필름]

*영화 내용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화의 다름과 도덕적 올바름

영화 ‘미드소마’는 스웨덴 가상의 마을 공동체 ‘호르가’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존의 공포영화들이 어둠속에 숨은 악령, 암살자들이 주인공을 공포로 몰아간다면 이 영화는 해가 지지 않는 스웨덴의 하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백두대낮에 초원에서 사냥한 가젤을 피범벅이 되도록 뜯어먹는 사자를 본다면 어떻겠는가? 제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썩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다.

‘미드소마’의 공포는 다름에 대한 이질감, 불쾌함을 담담하고 당당하게 노출시키며 아주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때문에 고어와 오컬트장르에 서툰 관객들은 내내 역겨운 감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극장을 나서면 기분이 더럽다 던지, 속이 안 좋을 수도 있다. ‘호르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디까지가 문화적 다름으로 인정되며 도덕적으로 허용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예컨대 정해진 나이에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것과 숭배하는 대상에게 제물로 산사람을 바치는 것, 근친상간에 대한 것들이다. 당연히 금기시 되는 행위들이지만 이들에겐 집단을 지켜온 명예로운 관습이다. 

친절한 ‘호르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또 우리를 그들의 세상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려한다. 황홀하리만치 눈부신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풍족하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환각을 표현하는 장면 연출. 어느새 현실감각이 떨어지며 환각에 빠져든 것 같은 기분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모호한 경계에 걸쳐진 나의 의식을 끊임없이 설득하여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을 받아들이게끔 강요하는 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낸 공포가 아닐까 싶다. 침착하고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 결국 내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들고 웃게 만든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네이버영화

졸업논문을 준비하는 두 남자

두 명의 주인공은 논문을 위해 이곳의 말도 안 되는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조사해나간다. 졸업논문이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해가 지지 않는 9일간의 하지제(夏至祭)를 행하는 비밀스러운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욕심이 날것이다. 이 설정이 자연스럽게 ‘호르가’의 충격적인 생활양식을 소상히 드러나게 해준다. 둘의 속물적인 행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경멸과 동시에 묘한 합리화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호르가’의 충격적인 의식과 문화는 점점 알리고 싶은 특종이 된다. 만약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 가족 그리고 공포

이번에 두 번째 공포영화를 연출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은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유전’이다. ‘유전’에서는 가족이 저주의 대물림으로 사용된다.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저주가 엄마를 통해 결국 아들과 딸을 집어삼키며 가족을 파국에 치닫게 한다.

‘미드소마’에서는 좀 더 큰 범위의 가족인 공동체가 수 백 년에 걸쳐 이어진 그들만의 경전을 숭배하며 특별한 의식을 위해 타인을 공동체로 끌어들여 희생시키며 공동체를 지킨다. 다만 ‘미드소마’에서는 동화되거나 제물이 되거나 라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가족이란 본래 날 때부터 필연적인 관계이기에 쉬이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족으로 말미암은 공포는 벗어날 수 없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극대화된다.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은 공포의 실체를 파악하더라도 벗어나기 힘들다.

혼자 심야영화로 ‘미드소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 괜한 찝찝함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오컬트를 즐기는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미드소마’는 공포라는 장르로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이게 공포야?’라는 물음을 가진 관객이 많다. 그런 물음에 오컬트호러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무엇이 공포인가?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음침하게 우리는 노리고 있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아닌, 해가지지 않는 밝고 평화로운 마을. 방문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알려주는 공동체. 그 너머의 기괴한 신념으로 뭉친 집단의 광기. 그 광기를 친절한 얼굴로 납득시키는 것. 그것이 ‘미드소마’의 공포이다. 

신영준

언론정보학 전공.
영화, 경제, 사회 그리고 세상만물에 관심 많은 젊은이.
머리에 피는 말라도 가슴에 꿈은 마르지 않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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