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청년칼럼=최미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끼던 옷이 하나씩 사라진다. 올해는 작년에 자주 쓰던 모자가 사라졌다. 또 새로 사야 되나 싶어 속상했다. 못 찾을 줄 알면서 옷장 문을 열었다. 우두두. 겨울 옷장을 여니 정리 안 하고 쌓아놓은 옷들이 쏟아진다. 언짢은 기분이 겹겹이 쌓인다. 

애초에 모자 찾기는 포기하고, 떨어진 옷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갰다. 후드 티, 니트, 원피스까지 종류가 많다. 어떤 스타일로 입으면 날씬하고 길어보일지 생각 없이 이것저것 많이 사놓은 까닭이다. ‘몇 년 손 안 대면 내다 버려라.’는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언젠가는 입게 된다’며 말대꾸를 하곤 했다.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순간 ‘다 버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옷을 모으는 나를 아빠가 왜 이렇게 답답해했는지 이해됐다. 이들의 역할은 옷장을 지키는 것 말고 없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손도 안 된 옷들이 제법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라는 말을 외며 옷가게가 보일 때마다 욕심을 채워 왔고, 그렇게 옷장 한가득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픽사베이

그런데 갑자기 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올해 들어 내 쇼핑 습관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봄나들이 겸 친구 따라 쇼핑 갔을 때였다. 옷만 보면 무조건 구매부터 하고 보는 내가 어느 순간 티 하나를 사는데도 깊은 고민을 했다. 백화점 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때부터 수많은 기성복을 나만의 방식으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색깔에 끌려 샀다 한 번 입고 말 옷, 내 다리를 더 짧아 보이게 만들 옷, 하루 종일 배에 힘주다 힘들다고 결국 방치할 옷 등. 예쁘다 칭찬하는 백화점 직원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같이 간 친구의 잘 어울린단 말에 바로 샀을 법한데, 이제 타인의 말보다 내 생각이 더 중요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신기하게도 옷 고르는 안목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생긴 후부터 갖춰졌다. 

갈등 일으키기 싫어서, 욕 먹을까봐 등 여러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 얇고 긴 관계를 맺어왔다. 끊어 내는 법을 몰라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에게마저 언제나 친절하게 대했다. 그렇게 마음의 옷장에 여러 가지 종류의 옷들이 쌓여 숨이 막힐 듯 힘들고, 아팠던 이후 서서히 사람 끊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대지 않은 옷들에 숨겨져 아끼던 모자를 잃었던 것처럼 얇은 관계를 이어가다 소중한 인연을 놓치기도 했다. 

아직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척하면 척 빠른 시간 내 고르진 못한다. 착용해 보고, 거울을 여러 번 들여다봐야 대충 걸러 낼 수 있다. 입는 족족 모두 마음에 들던 과거에 비해선 많이 발전한 편이다. 똑같이 나와 어울리는 사람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만 ‘이러이러한 사람과는 이렇게 되던데’와 같은 범주가 생겼달까? 

요즘 생긴 목표는 좀 더 많은 기성복을 멋지게 소화할 수 있도록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다.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단단해지면 옷매가 잘 살지 않을까? 덩달아 타인과 깊게 교감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있다. 나날이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기분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원피스가 잘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이 사람의 외모, 체형에 따라 다르듯 사람이 좋고 나쁜 것 또한 개인의 성격,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누구에게나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쁜 사람이 누군가에겐 더없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나에게 맞는 사람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아마도 그건 내 자신을 가꾸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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