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뒤안길]

[논객칼럼=유세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2년 연속 후퇴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예상외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던 미국 경제는 올해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신임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 불사를 외쳐 불안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의 6월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8%나 감소, 2017년 7월 이후 최대 하락을 기록했다. 2분기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유럽 경제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오는 10월 2번째 소비세 인상이 예정돼 있다. 성장을 위한 돌파구 찾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 연준이 지난달 31일 11년만에 금리를 인하하자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금리를 경쟁적으로 인하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은 1년반 넘게 지속해온 관세 및 무역전쟁을 이제 환율전쟁으로까지 넓혀나가고 있다.

Ⓒ픽사베이

한마디로 세계 경제는 지금 사실상 최악인 상황이다. 지난 7월 JP 모건의 세계제조업지수는 3달 연속 하락해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디스는 올해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3.8%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럴 때 세계 1, 2위의 경제대국 간 갈등 격화는 전세계가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다. 무역 및 통화전쟁이 격화되면 금융시장에 압박이 가해지고 무역을 위축시키며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높여 세계 경제는 심각한 하방 압력을 받게 된다. 기업이 신뢰와 확신을 갖지 못해 경기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그러한 우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미-중간 갈등은 끝없이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모두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들이 이 같은 사정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중국과의 무역협정이 목전에 놓여 있다고 말했었다. 지난 6월 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휴전이 이뤄져 이후 수차례 협상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트럼프는 수차례의 무역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자 "중국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뒤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을 교착시키고 있다"고 비난한 뒤 지난 1일 9월1일부터 3000억 달러(363조 6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이미 2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셈이다.

시진핑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국은 수입하기로 약속했던 미국 농산물 구매를 중단한다고 밝힌 뒤 5일에는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이 1달러에 7위안을 넘어서는 '포치'(破七)를 사실상 용인했다. 또 8일에는 위안화 환율을 7위안 이상으로 고시해 포치를 공식화했다. 위안화 환율이 1달러에 7위안을 넘어선 것은 2008년 이후 11년만이다. 미 재무부는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이후 25년만에 처음이다. 미·중 양국이 서로를 쓰러트리고야 말겠다는 죽기살기 식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포치를 공식화한 것은 앞으로 미국의 적대적 무역 행위에 중국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복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곧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고 더이상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을 의미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를 지냈던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양국 모두 상대에 대한 신뢰를 잃어 최소한 당분간은 타협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 협상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중국과의 무역협상으로 미국의 수출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트럼프는 전혀 협상 전문가답지 못하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 희망을 포기한 것은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마디로 신뢰할 수 없는 협상 상대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의 부동산업자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부동산업자로서 몸에 밴 스타일은 국제 협상과 외교 무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모두 현재로서는 타협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경쟁자에게 공격을 빌미를 줄 수 있는 중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소극적이다. 홍콩에서의 민주화 요구 시위라는 예기치 못했던 복병을 만난 시진핑 주석도 오는 10월 중국의 공산당 통치 70주년을 앞두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중간 무역·환율전쟁이 무한정 계속된다면 양국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는 경기침체에 빠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무디스 어낼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경제연구원은 "대통령의 불장난으로 경기침체의 위험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양국 경제대전의 앞날을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모두 이를 용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특히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중국으로선 더욱 미국과의 무역·환율전쟁을 무한정 계속할 수 없는 처지이다. 아직까지는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대규모 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일은 중국으로선 절대적으로 피해야만 한다. 1달러에 7.2∼7.3위안 선에서 타협을 시도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경제전쟁은 결코 미국과 중국 간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휘말려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여기에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함께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되는 등 마찰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현명하고 올바른 정책을 통해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가길 기대할 뿐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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