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박지원 의원에게 보낸 ‘험담’을 보고

[논객칼럼=이계홍]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듣기도 민망한 험담을 했다. 대안정치 소속 박지원 의원을 향해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지 말라"고 비난한 것이다. 박 의원이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고 정주영 회장의 고향인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우리를 겨냥해 미사일 등을 발사하고 막말과 조롱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정상국가로의 진입이 아닌, 야만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를 즉각 받아 “(박 의원은)'혓바닥을 함부로 놀려대지 말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6·15시대에 평양을 방문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을 부리던 이 연극쟁이가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거리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인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 꼴이 더럽기 짝이 없다"며 "도덕적으로도 덜돼먹은 부랑아이고 추물"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마치 자기가 6ㆍ15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하는 박지원이 이번에도 설태 낀 혀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였다”며 “구역질이 나 참을 수 없을 정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더 참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우리와의 관계를 망탕(마구)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면서 더 이상 “멍청한 짓”을 또 할 경우 ‘무언가 폭로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암시했다.

한마디로 쌍욕보다 더 지독한 험담이다.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새 무기 시험사격을 지도했다고 17일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박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을만한 것이 무엇인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고향 통천에서 소년시절 소 한 마리를 가지고 무작정 상경해 부자가 되어서 그 천 배인 1001마리를 가지고 금의환향해 고향산천에 인사하러 갔었다. 소 1001마리는 그냥 소 1001마리가 아니라 남북 번영의 상징이고, 고향에 대한 예의를 차린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다. 그런 곳에서 미사일 실험을 했으니 박 의원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 회장의 평화로운 고향 마을을 전쟁놀음터로 만들지 말자고 발언했던 것이다. 그 뜻을 헤아리지 않고, 조건반사적으로 “설태 낀 혓바닥을 놀리지 말라”라니? 

북에 감히 말한다. 남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그래도 가장 우호적인 사람이 박지원 의원이다. 남한의 냉전세력, 수구세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종북’ ‘좌빨’이란 비난을 들으면서도 변함없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아파하며 지원하자고 말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북한을 이해하고, 남북협력을 통한 북한의 번영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는 사람”이라니...

북한은 원래 ‘익명’ 뒤에 숨어서 남한에 대한 온갖 험담과 쌍욕을 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그러는 것이려니 하지만, 이건 지나치다. 이런 논평은 당 간부의 소리나 다름없다. 북한 매체는 공영이 아닌가. 이 칼럼은 기명 칼럼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 논평이 아니지만, 당의 입장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목소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남한 역시 한때 북한의 이런 쌍욕을 쌍욕으로 맞받아친 적이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그랬다. 북한이 더러 옳고 정당한 말을 해도 상투적 생떼, 생어거지, 미치광이 궤변, 궤멸시켜야 할 집단,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찢어죽이자’라고 대응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2000년 6.15 이후에는 이런 ‘설태 낀 구역질나는 언어’들이 사라졌다. 북한 정권과 상대적으로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한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와 예의를 지켰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한 것이 한미연합 훈련에 맞대항하는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고 하면, 그에 맞는 레토릭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내놓긴 했다. 그러나 기왕이면 남한 사회를 설득할 멘트를 내놓고, 남북 공히 평화 모드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어야 했다.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마당에 그들 입방에서 방어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격적인 훈련까지 강행했으니 다시 한번 숙고해보자고 보다 본질적인 담론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면 훨씬 더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열리고, 그들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북한의 막말 비난에 대해 박지원 의원이 19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

그런데 입에 담지못한 험담을 남발하며 적대감을 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 대결주의로 가자는 것, 냉전시대 적대적 의존 관계로 가자는 것. 그런 분위기마저 풍긴다. 

남한의 소극적 대화가 마음에 걸린다고? 북은 1인 결정 구조지만, 남한은 여야가 있고, 외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숙명적으로 떠안은 구조적인 문제다. 이걸 모르고 몰아붙이면 상대방을 너무 모르는 처사다. 남한 사회는 여야는 물론 외세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고, 삼중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권력집단은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남북 화해와 협력, 경제공동체 진입은 권력 상층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지도 모른다. 화해와 협력이 가속화하면 주민 의식이 진화되고, 비판의식이 높아져서 현재 홍콩이나 과거 남한사회와 같은 민주화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상유지를 하되, 인민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이름 아래 남북 대화의 시늉을 하면서 북한 인민에게 끝없는 ‘희망 고문’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것은 남한 사회의 수구 냉전세력과 동일한 관점이다. 적대적 의존 관계. 적으로부터의 위협을 팔아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비난하는 남한의 냉전세력과 결과적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북한은 잘못 짚었다. 남한사회의 구세력도 예전처럼 북을 적대적 의존관계를 이용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사고를 수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에게 감히 권한다. 쓸데없는 대결과 욕설이 협상력을 제고시킬 전략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서로의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신뢰회복은 커녕 상대방을 넌덜머리가 나게 한다면 남는 것이 뭔가. 빈 손의 공허일 뿐일 것이다.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디테일이 세상을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낡고 도식적 스타일은 새 시대의 트렌드에 맞지 않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문법으로 언어 하나에도 세련되게 발전시켜야 한다. 작은 것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방해세력이 많을 때는 특히 서로 유의하고 배려해야 한다. 상호 존중하며 ‘유리그릇’처럼 남북관계를 다뤄야 하는 것은 한민족 미래를 위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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