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18]

[논객칼럼=최하늘] 실제로 내게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왔다. 보이지 않은 유령과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 때문에 제법 시달렸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내 마음과 생각이 문제였다. 내 마음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현재로 가져와 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을 여러 걱정거리가 나를 파고들었다. 그건 실제가 아닌 허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시간을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시간’이라 불렀다.

내 삶의 질을 좀 먹는 심리적 시간에서 빨리 도망쳐 나와야 했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려 드는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다. ‘여기,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나이 듦의 특권 중 하나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려면 나를 노예로 만드는 매임에서 풀려나야 한다. 삶이 고달픈 것은 이 매임 때문이다.

그 매임은 두 곳에 뿌리를 둔다. 팍팍한 현실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내 마음과 생각이다. 전자는 내 힘으로 당장 어찌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후자는 그 실체를 안다면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내 마음과 생각이 만들어 내는 ‘허상’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질을 배나 끌어 올릴 수 있다. 이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준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게 마음’(렘17:9)이라고 적고 있다.

Ⓒ픽사베이

‘Here and Now’를 살아라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나이 듦에 관해 얘기한 책 ‘마흔에게’에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눈앞의 바꿀 수 있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노년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힌트라고 말했다.

이치로는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춤”이라고 했다. “춤출 때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춤은 도중에 멈추더라도 괜찮다. 춤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해 추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마라톤이 미래의 한 지점을 향해 달리는 것이라면 춤은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 내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그것이다. 어떤 장면을 보여줘도 부담이 없어 좋다.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때도 많다. 그래서 비슷한 장면이 많아도 거부감없이 빠져든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같이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그들 대개는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질병, 재정, 인간관계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자연을 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보여주는 삶에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그들이 자신을 얽매고 있던 것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진 것을 본다. 또 하나 그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산다. 자연이 그들에게 안겨준 선물일 것이다.

예일대 교수를 지낸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저서 ‘Here and Now’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려야 현재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썼다. “지금을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며, 지금은 바로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도 인간이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에 붙잡혀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기독 저술가 C.S 루이스는 악마가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악마가 인간을 어떻게 유혹하고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악마의 임무와 의도를 세밀히 묘사해 놓은 ‘악마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원수(하나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는 데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하는 일에 신경쓰기 바라지만, 우리(악마)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멈춰라

이제 나를 얽어매고 있는 근거 없는 불안과 걱정, 두려움의 실체가 파악됐다. 그것은 내 마음과 생각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악마가 내 마음에 끊임없이 불어 넣는 거짓에 속지 말 일이다. 내 마음은 고침을 받아야 할 나의 일부일 뿐, 내가 아니다.

심리학자들도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걱정의 허구성을 얘기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J. 젤린스키는 그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진면모를 이렇게 파악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거리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이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을 멈춰야 한다. 생각에 몸이 반응해 나오는 게 감정이다. 불안 걱정 두려움 등 어떤 부정적 감정도 단호히 거부할 일이다.

“나쁜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분노나 공포, 죄책감 같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지 말라.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그것들이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도록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인터넷에서 읽은 ‘인디언 명상법’)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 6:34)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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