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우선 떠오른다. 그 외에도 ‘아름다워요’라든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탁월해요’ 등 그 말을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인 대체의학자의 저서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긍정적인 말이 물의 결정체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몸의 70% 이상이 물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의 몸에도 좋은 말들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다고 주장했는데, 실험 후에 생긴 물의 결정체 패턴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책이다. 좋은 말이 가진 신비한 영향력을 나름대로 신빙성있게 보여주는 책이지만, 저자의 실험결과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회의론자라도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을 조금이라도 위로받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 때문에 큰 손해를 보거나 심리적인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상대방을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치유가 되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될 이유는 없는데 일상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흔히 보지는 못한다. ‘아이엠 쏘리(I am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미국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인색하게 쓰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보통 화가 누그러지고 잘못을 범한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진심을 다하여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화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으로 외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피해 유가족들이 살인자를 용서하고 사형제 폐지를 위해 쓴 글들을 하나로 묶어 낸 책이다. 용서의 미덕을 실천할 때 파급되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일반대중이 인식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감동적인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은 한국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한 집중 캠페인을 벌일 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무조건적인 용서'는 용서하는 당사자의 기분을 좋게 할지언정 용서받는 사람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거나 용서받음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주는 효과가 그다지 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을 일깨우는 의미있는 용서가 이루어지고 그런 미덕행위에서 나오는,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영향력까지 기대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과정이 있어야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입장에서 진정한 마음으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정성어린 사과와 뉘우침의 말이 먼저 제대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의 아베정부는 사과할 줄 모르는 가식적인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열등한 의식수준이다. 일본역사상 오랫동안 한국문화의 우수성에 비해 뒤떨어져 왔던 일본인들은 정신적인 열등감에 시달려온 것 같다. 한국인들에게 억지로 식민지배를 강요해야 했던 것도 그만큼 심각한 열등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에 궁색한 변명이나 자기방어의 언어를 퍼뜨릴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으니 문제해결은 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커지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문화생활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더 잘사는 상대방과 비교할 필요 없이 자생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떳떳하게 사는 것이 표면적으로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몇배 더 가치 있는 일이고 어떤 처지에서든 누구나 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당당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끝까지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이 가진 자긍심을 지키는 사람과 우선 당장 급하다고 느껴지는 하위차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표현이 있는데 시기심, 부러움, 질투심 등 부정적인 감정에 내몰릴 경우에 결국 손해를 보는 사람은 자존감이 약한 쪽이다. 좀 더 나은 처지에 있어 보이는 다른 사람이나 국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있게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이 우리 마음에 필요한가? 우선 상대방을 경쟁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가진 자부심을 혼신을 다하여 지킬 필요가 있다. 그런 자부심 내지 자긍심은 갑자기 날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뭐래도 평소에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아왔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떳떳함에서 나온다.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정보 이외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자동적으로 내장된 양심을 갖고 있다. 개인이익 추구나 우선 당장 즐길 수 있는 평안함에 매몰되어 타인의 안녕에 완전히 무관심하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차가운 자기방어능력과는 달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따스한 양심을 제대로 행사해야 지혜로운 결정을 하고 타인에게까지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인위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보다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마음 속 양심이 우리의 영혼을 두들기며 우리 가슴에 안겨주는 인간다운 배려심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지키기 위한 기본조건이 된다.

우리 사회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고 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한 정도에 이른다.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효율성과 풍요로움을 즐기면서도 그에 준하는 삶의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안이나 전체 사회의 공익은 안중에도 없이 무책임하게 제멋대로 사는 이기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인류 전체 공동체가 이루어내는 삶의 행태가 전반적으로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온갖 유형의 불행과 크고 작은 사회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저녁 뉴스에서 접하게 된다. 음주운전 후에 무작정 도망가는 치졸함, 결국 영혼까지 팔게 되는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약의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음, 젖먹이 아이를 학대하고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철면피함 등 인간의 적나라한 미개성의 모습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생존목적으로 우선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동물들이 저지르는 잔인함을 너무 자주 보게 된다. 슬프다!!

앞으로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의 공감능력은 더욱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이 진화하는데 있어서 필수요소가 되는 것은 공감능력과 의사소통능력을 통한 공동체의식과 협동심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에서 발표한 인간도덕성 진화과정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사회는 ‘공감의 도덕’이 먼저 발달한 후에 ‘공정의 도덕’ 그리고 ‘정의의 도덕’으로 진화해 왔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심이 없이 공감능력에 기반하는 도덕적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서로 의존하고 상호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고 조화로운 사회질서와 평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정의감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원리가 작용하도록 되어 있다. 공감능력, 협력심, 배려심의 영역에서 인간이 동물보다 월등하지 못하다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매우 궁금한 것이 있는데, 동물의 왕국에서도 미안하다는 언어가 있는지 그리고 미안함을 표시하는 동물수준의 표현이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사회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엄연히 있고 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에게도, 그리고 사회전체 이익을 위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의 효율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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