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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네(本音)의 민낯[임종건의 드라이펜]
임종건 | 승인 2019.08.23 09:41

일본인의 특질을 규정하는 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이다. 우리말로 혼네는 속마음, 다테마에는 겉마음으로 풀이된다. 일본인들은 다테마에를 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혼네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다테마에를 통해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것은 친절과 예의 절제, 교양, 단결력 등 일본인의 미덕으로 칭송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테마에 숨겨진 혼네를 알게 되면 혼비백산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 때로는 면종복배(面從腹背)일 수도, 양봉음위(陽奉陰違)일 수도 있을 터이므로.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전쟁에서 일본의 혼네는 무엇이고 다테마에는 무엇일까? 한국인의 눈에는 혼네도 다테마에도 아닌 막무가내만 있는 듯하다. 다테마에의 미덕의 자리엔 상대에 대한 무례와 억지, 복수심만 가득해 보인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한국의 징용자 재판 결과와 위안부 합의 번복에 대한 보복임은 대부분 일본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아베 정권의 조치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점에서 대한 수출금지는 일본의 혼네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픽사베이

이에 대한 아베정권의 다테마에는 경제보복이 아니라 수출관리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한 전략물자가 일본의 적성국에 넘겨질 가능성이 있어 한국에 대한 수출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짐짓 점잔을 떨며 말하고 있으나 듣는 입장에선 그런 뻔뻔한 거짓말도 없다.

1905년의 을사조약이 한국을 병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약이라고 했던 그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내달라고 했던 그들이다. 100년 전, 500년 전의 철면피를 21세기에 다시 보는 꼴이다.

그들은 수출규제의 부당함을 항의하러 일본경제통산성을 방문한 한국의 실무협상단을 창고로 데려가 물 한 잔 내놓지 않고 만나서는 한국협상단 측이 ‘규제 철회’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회요청은 없었다고 억지를 부렸다.

국회 여야합동방문단이 갔을 때는 만나기로 약속한 자민당 간사장이 회담을 연기하자고 하더니 다음 날 아예 취소하는 무례를 저질렀다. 일본인들의 다테마에 속에는 그런 거짓과 억지와 무례의 혼네가 공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구상에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가 있다면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본을 공격목표라고 공개 지목한 북한 외에,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러시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한일 간에도 독도문제가 있지만 한일은 미국과 함께 동북아에서 자유민주제도와 시장경제 원칙을 지켜온 3각동맹이다. 이 동맹이 와해되지 않는 한 한국은 일본의 안보를 위협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북한 사이의 대화무드로 인해 일본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면 한국이 일본산 전략물자를 북한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얘긴데, 이것은 한국에 대한 모함이거나 한미 간을 이간하려는 술수에 가깝다.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연속적으로 한국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대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놓고 이 미사일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북한 비핵화에 실낱같은 기대를 버릴 수 없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받는 위협은 일본에 비해 훨씬 크고 직접적이다. 한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어떤 형태로던 도움을 준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달리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일본인들은 외교문제에 관해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 해도 개인이나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나, 같은 경우 한국인은 시비곡직(是非曲直)부터 따진다.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서도 야당은 정권퇴진을 외치고, 정부여당은 정부대응에 대한 비판세력을 ‘친일파’로 몰아세워 ‘관제 친일파’까지 생겨났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정부가 개입하려하자 시민들이 거칠게 항의하고, 정부여당이 얘기하는 2020년 도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의 무모함을 질타한다.

일본이 이것을 한국의 국론분열로 보고 어부지리를 노린다면 오판이다. 다수의 한국인은 일본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친일파'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의 경제전쟁은 일본의 도발이 사태의 전부라면 이를 초래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경제전쟁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제의에 무성의로 일관하는 일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했다. 경색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질 조짐이나 일본이 대화에 응하면 양국 관계는 언제든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의 '친일파' 모두를 반일 대열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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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imjk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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