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쇼!사이어티]

“일본은 거듭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다... 전쟁과 상관없는 다음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아베)

“나치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에 한도를 정할 수 없다... 역사를 학교나 사회에서 전파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역사적 책임이 있다.” (메르켈)

201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70년을 맞이한 아베와 메르켈의 연설을 들여다보면, 두 전범국의 서로 다른 역사관이 뚜렷이 대비된다.

아베에게 역사란 ‘작은 점’ 같은 것이다. 물건을 사고팔 듯, 계약서 몇 장으로 깔끔하게 지울 수 있고, 과거에 이미 계산을 다 끝낸 거래 정도로 여겨진다. 그래서 일본 우익정부는 거듭해서 ‘이미 다 사과하지 않았냐’고 생색을 낸다. 박정희 정부의 1965 한일합의, 박근혜 정부의 2015 위안부합의, 그리고 고노담화-무라야마 담화 등으로 역사는 깔끔하게 정리됐고, 굳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 합의를 도출한 한국 정치인들, 혹은 그들을 뽑은 국민성을 탓하라고 반격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 우익들의 주장과 달리, 한국 중국 등 피해 국가들의 반일감정은 오히려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심지어 역사교육이 전멸했다고 알려진 일본 시민들도 ‘오사카 수요집회’와 ‘전범기업 배상요구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자 개개인의 아픈 기억들에 교육과 문화, 그리고 시민들의 힘이 보태지면서 근섬유처럼 질긴 ‘집단기억’으로 한데 엮였다.

한편 독일에서 역사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확장하는 무한한 ‘파동’ 같은 것이다. 역대 총리와 대통령들이 피해 국가를 찾아가서 사죄의 연설을 하고, 그들과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며, 피해자들을 찾아서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 전 세계에서 나치에 협력한 전과자들을 추적해 90살 넘은 노인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독일 스스로 역사의 흐름에 동참했기에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 동서통일과 유럽연합이라는 리더십을 획득했다.

일본이 이미 충분히 사과했다는 논리는, 아베와 일본우익은 물론 국내에서도 들려온다. 물론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나 협정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못해 찍은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었지, 피해 국가들의 문화, 교육, 시민의식에 동참하는 진정어린 반성은 아니었다. 진정 역사를 반성한다면 독일처럼 ‘집단기억’에 투자해야 한다. 예컨대 전범의 역사를 자세하게 담은 국내 역사교육, 피해 국가들과의 공동역사연구, 피해자 배상을 위한 시스템 등을 마련하여 과거사를 널리 알리고, 그 피해를 복구하는 등 시효없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완고한 일본 우익정부의 태도가 변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들은 국내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의 한일 대립구도를 은근히 즐기고 있다. 역사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한국은 보다 많은 아군을 확보해야 한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No JAPAN'으로 상징되는 체제대결에서 벗어나 ’No 아베', 즉 우경화에 반대하는 일본 내 양심세력의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 또한 과거 일본에 침략당한 중국, 뉴질랜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피해 국가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역사는 진실이며, 확장하려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단지 정치대표 한 명이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사과했다거나 반성했다고 할 수는 없으며,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역사를 기억하는 모두의 진심어린 동참이 필요하다. 이처럼 무한 확장하려는 역사의 ‘집단기억’으로서의 속성을 잘 활용한 해법을 기대해본다. 팽팽한 대립을 은근히 즐기는 아베 정부와의 대화 말고, 역사의 진실을 간직해온 세계적인 시민과 양심의 힘을 모으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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