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논객칼럼=김선구] 국가 간 교역에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가 쌓인 관계가 아니라면 계약대로 선적했다는 서류에 근거해 은행이 물품대금결제를 보증하는 신용장방식이 통상적으로 사용된다.

수입자가 속해있는 나라가 못 사는 나라여서 대외신용도가 떨어지면 수입자가 속한 나라 은행이 발행한 신용장이라도 신용도가 높은 나라 은행이 다시 보증하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무역거래도 할 정도의 외환이 없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수입을 할 때는 바터란 물물거래 방식이 쓰이기도 한다.

수입국에서 나오는 광산물이나 임수산물과 수입하고 싶은 물품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비용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물교환이란 화폐가 도입되기 전의 불편한 상거래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품앗이란 전통은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미풍양속이다.

씨앗을 뿌리거나 모내기와 추수 등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할 때의 농사일은 물론 지붕잇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돕고사는 풍습이다.

품앗이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교환과는 달리 정확하게 교환가치를 따지지 않고 참여자의 개별적인 특수상황을 인정하면서 신뢰와 인정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손이 더 부족하거나 경제적으로 약자인 이가 혜택을 더 보게 되는, 일종의 사회안전망 기능이 더해진 우리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픽사베이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란 기본적으로 개인이 부담하는 세율이 높기 마련이다.
50% 정도의 소득세율이 적용되던 캐나다에서 서로 다른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 서로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는 방식으로 세무서 신고대상 수입을 줄여 세금부담을 낮추는 모임이 암암리에 생겨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형식적으로는 우리의 품앗이와 유사해보이나 그들간에 주고받는 서비스일 테니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이해득실을 크게 따지지 않는 우리의 품앗이와는 그 정신에서 다를듯하다.

오늘날의 경조사도 품앗이 성격이 짙게 묻어나는 풍습이다.

결혼이나 장례를 치르고 보관되는 방명록을 갚아야 할 외상값 장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고관대작이나 사업상 갑에게 건네는 축의금이나 부의금은 갚아야할 대상이 아니나 그렇지 않은 경우 장부를 보며 평생 갚아나간다 한다.

은행에서 같이 일했던 지인한테 듣고는 놀란 적이 있다.
그는 경조사로 누구에게 얼마씩 건넸는지 평생의 장부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 장부가 외상매출금 장부나 마찬가지로 보이나 보다. 

같은 계열내 증권사에게 회사채발행이나 회사 상장업무 등 비즈니스를 몰아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부 조치가 나오자 계열간 품앗이 하듯 교차로 서로 업무를 주고받는 꼼수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비단 재벌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최근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 중, 특히 국민을 분노케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후보자 딸의 대학입학부터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기까지 부모가 연줄을 동원해 만들어낸 특혜입학 여부다.

고교생 그것도 외고생이 2주 인턴으로 의학논문에 제1 저자로 등재되는 과정과 이를 해명하는 관련자들의 말에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연구에 참여해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도 제 1저자란 자리를 빼앗기면서 아무런 제지도 못하고 침묵한 연구자들처럼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힘 있는 교수 눈치만 보는 젊은 제자들을 당연시하는 학계의 풍토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최근 신문에는 자녀 스펙 품앗이가 교수사회에서 공공연한 관행이라는 입시전문가의 말이 실려 있다.

교수를 포함한 힘 있는 자리에는 독신자로 자격을 제한시켜야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게 한다.

품앗이란 약자가 혜택을 보는 좋은 전통인데, 베풀어야할 위치에 있는 사회지도층이 자기들 자녀들에게 대를 이어 잘 살게 하려고 공정경쟁을 피해가는 품앗이로 사회를 어디까지 타락시킬지 걱정이 앞선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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