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강제이주사 다룬 연작시

[오피니언타임스]

‘마흔날을 서쪽을 서쪽으로 달려만 갔다’

시는 물론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창작·연구 작업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문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이동순 시인이 최근 신작 시집 ‘강제이주열차’를 내놨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은 50년 가까이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입지를 굳혀오면서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전집’을 발간하는 등 분단으로 매몰된 많은 시인을 발굴, 문학사에 복원해왔다. 1989년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돼 비평가로도 활동해온 시인은 대중가요사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동순의 그시절, 그노래'  오피니언타임스 연재 중)

-이삿짐 꾸려

화물차에 싣고서

정든 집 뒤로 두고 길 떠나는데

키우던 삽사리

아무 영문도 모르고

컹컹 짖어대며 따라오던

그 모습이 눈물 속에 어룽거리네

―「떠나던 날」 부분

‘강제이주열차’는 시인의 열여덟번째 시집으로 구소련의 스탈린 정권이 자행한 고려인 강제이주사를 다룬 연작 성격의 작품집. 강제이주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슬픈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인 이 시집에는 '머나먼 동쪽 끝에서 쫓겨와/평생을 물풀처럼 떠돌다 마감한'('고려인 무덤') 고려인들의 한 맺힌 삶과 죽음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 자체가 각별한 동시에 희생당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그 모두의 애끓는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 시인의 정성과 내공이 문학적으로도 빛을 발하는 귀한 성과다.

제1부 ‘강제이주열차’에서는 부제 그대로 강제이주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시집에서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목이다. 시인은 80여년의 세월 동안 소외와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던 강제이주 문제를 자기 문학의 화두로 삼고서 그 시절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었다”('우리는 무엇인가')던 고려인들의 처절한 수난의 역사를 세세하고 실감나게 복원해낸다. 삶의 터전이던 연해주에서 하루아침에 수만 km 떨어진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내몰려야 했던 장삼이사들의 숱한 사연이 담겨 있다.

제2부 ‘슬픈 틈새’에서는 사할린 한인들을 주로 다뤘다. 역사학자 반병률 교수의 해설에 언급된 바와 같이 사할린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일본 간 분쟁의 장이었던 곳으로서 무수한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아픔이 서려 있다. 시인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만리타향에 뼈를 묻은'('강제징용자') 사할린 한인들의 기구한 세월을 그려냈다.

제3부 ‘두개의 별’에는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시인은 '낯설지 않은 얼굴들'('바자르')의 고려인들을 만나면서 '말은 안 통해도/굳게 잡은 두 손으로 전해오는 힘'('크질오르다에서')에서 동포로서의 애틋한 정을 느끼기도 하고, 고려인 묘지에 나란히 묻힌 두 혁명가 홍범도와 계봉우를 기리기도 한다. 특히 시인은 전10권에 이르는 서사시 '홍범도'(국학자료원 2003)를 집필하기도 해 홍범도 장군이 대한독립군을 창건하면서 공포했던 ‘유고문’의 형식을 빌린 '신 유고문(新諭告文)'은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서>

살아선 세상에 갇혔고

죽어서는 쇠 울타리에 갇혔네

얼굴과 이름 새긴 돌비 하나 누가 세웠으나

더 큰 풀 돋아나 다시 묻혔네

(…)

곧 쏟아질 눈발이

그대 어깨 위에 나비처럼 사뿐 내려앉아

내 모든 사연 낱낱이 일러주리니

결코 나를 서럽게 여겨 울지 말거라

―「고려인 무덤」 부분

 

땅심이 약해서 거름 넣고

석삼년 지나서 벼농사 열었지

연장이 마땅찮아

농수로는 그냥 손으로 팠다네

땀 흘려 일할 때도 언제나 아리랑

(…)

이렇게 지은 벼가

해마다 구월이면 황금물결

쌀과 채소는 먹고 남아

시장에 내다 팔았지

눈물로 일군 논밭 물끄러미 바라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리랑

―「아리랑의 힘」 부분

 

카자흐 사람들 팔짱 끼고

우릴 수상한 눈길로 지켜보는데

그때 언덕 너머로

나귀 방울 소리 들려왔네

우리 온다는 소식 듣고

밤새도록 가족들과 빵 구워 담은 자루

식지 않도록 이불로 덮어

나귀 등에 싣고 온

카자흐 사내 막심 아크바로브

―「내 친구 막심」 부분

 

내 이르노라

겨레 갈라놓은 세력

그들에게 도움 준 무리들은

이 땅을 떠나거라

동포끼리 뭉치지 못하고

서로 대립 반목 시기로만 골몰하며

갈등과 분열만 뿜어대던

너희 지네 전갈

독사 승냥이 무리들은

즉시 이 땅에서 멀리 떠나거라

가서는 영영 오지 말거라

―「신 유고문(諭告文)」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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