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우리 당의 기본 정치철학이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이해찬 대표)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고도 절실한 명제다.”(박광온 최고위원)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연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참석자들은 ‘차질 없는 지방분권 추진’ 의지를 다졌다. 민주당 정부만 그런 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고심해 왔다. 그러나 그저 말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말을 구두선(口頭禪)이라 한다.

Ⓒ픽사베이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은 ‘극에 달한 수도권 쏠림…총인구의 50% 첫 돌파’라고 보도했다. 통계청이 최인호 의원(민주)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추이’를 보면 7월 1일 기준으로 한국 인구는 5170만9000명인데 수도권 인구는 2584만4000명(49.98%), 지방 인구는 2586만5000명(50.02%)이다. 지방 인구가 2만1000명(0.04%) 많을 뿐이다. 이 전세는 8월이나 9월 중 역전될 것 같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인 수도권은 국토의 11.8%인데 이미 인구 절반이 몰려 산다. 통계청 계산으로는 2030년 전후로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와 관계없이 수도권 인구 비중은 늘어난다.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과밀화에 반비례해 지방 대도시 인구는 줄고 있다. 제2도시인 부산은 2010년 356만8000명이던 것이 2018년 344만1000명으로 줄었다. 대구, 광주, 대전도 추세는 마찬가지다. 인천만이 275만8000명에서 295만5000명으로 늘었다. 지방 중소도시들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미 2016년 전국 지자체의 30%가량이 ‘소멸 위험 지역’이란 보도가 나갔다.

신도시를 마구 건설하는 정책도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고 있다. 수도권 1기 신도시는 분당·일산 등 5곳에, 2기 신도시는 판교·파주 운정 등 10곳에 들어섰다. 현정부도 5곳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20곳이다. 인구와 돈이 몰리든 말든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말로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에 노력한다고 하니 이런 모순이 없다.

작가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을 연재한 게 1966년이었다. 소설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380개나 된다.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 명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그 시절에도 서울은 만원이었다. 수치만 늘어났을 뿐(구가 25개, 행정동이 424개, 인구가 975만 명이 됐다) 서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꽉꽉 차 있다.

서울 인구는 1992년 1090만 명을 정점으로 하향세인데, 아까 말한 대로 경기도에 대규모 신도시들을 건설한 탓이었다. 초만원인 서울 인구가 수도권으로 흘러넘친 셈이다. 덕분에 경기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준만 교수는 책 ‘바벨탑 공화국’(2019)에서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서울의 초집중화 폐해를 분석하는데, 그중 이런 것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선구자요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인물조차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서울 인구는 조선 초에 10만 명, 조선 말엔 20만 명이었지만, 1988년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여타 수도권을 합해 전체 인구의 절반을 거느리게 됐다며 “정약용의 경고는 놀라운 선견지명”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중앙 지향성은 뿌리가 깊다는 설명이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란 속담도 떠오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수도권으로의 중앙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개탄한다.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에서다. 그는 “비민주적 사회의 특징은 정치·경제·군사·문화적 권력과 영향력이 단일 중심으로 응집되어 있다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국토의 0.6%에 불과한 서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면서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된 형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수도권 초집중을 막으려면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실천하는 것 뿐, 무슨 기발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이 나온 게 53년 전이다. 그냥 체념하고 살아야 할까.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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