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첫 만남은 언제나 뻘쭘하다. 새 학년, 새 동아리, 새 학교 첫 날마다 난 쥐구멍을 찾기 바빴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극도의 어색함을 견디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유난히 한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 덩치가 큰 그 선배는 걸음이 느리고 행동이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우린 어쩌다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 그는 “아까 나 보고 놀랐지?”라며 자신이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말이 느려도 이해해 달라며. 1년 늦게 입학한 나와 한 학번 위인 그는 동갑이었고, 우린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 끝에 뻘쭘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난 그가 속해있던 문학동아리에 영업당하고 말았다.

친구는 동아리에서 귀염둥이 막내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었다. 새벽감성에 취해 극도로 오글거리는 시를 보내와 동아리원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고, 술에 취해 신나게 드립을 날리다가도 갑자기 진지모드로 “고라니야. 세상이 이래갖고 되겠냐”라며 정부의 과오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말은 느렸지만 그의 이야기는 항상 논리적이고 정돈돼 있었다.

Ⓒ픽사베이

친구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때때로 침해받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멘탈이 강한 건 아니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유의 호탕함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예민한 성격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결정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는데, 모든 일들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이 그것이었다.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내가 심한 우울감으로 동굴에 들어가면 천진한 표정으로 “몇 년 자다 나와라. 마늘이랑 쑥은 택배로 부쳐줄게”라고 한다거나, 캠퍼스 끝자락에 있는 강의실까지 걸어 올라가며 “아오 더럽게 힘드네. 내가 성공해서 곤돌라 설치하고 만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친구는 버스에 다리가 깔려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조차 “죽도록 맛있는 거 사들고 와. 나 진짜 죽을 뻔해서 웬만한 건 아무 맛도 안 나니까”라고 말했다.

고백하건대,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다. 애매하게 시간만 채운 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의 결과였다. 당시 정기적으로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해 활동보조와 청소를 했었다. 해야 할 일들을 사회복지사분들이 세심하게 알려줬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 드리고, 휠체어를 밀고, 복도를 청소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거주자들과 나의 거리는 멀어졌다. 의사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한 분들도 있었지만, 그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은 없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오늘 나온 밥은 입맛에 맞는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 땐 몰랐다. 주어진 일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성실함의 밑바탕에는 장애인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무력한 존재로 여기는 고정관념이 깔려있었다는 점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뚜렷하게 구분된, 철저하게 위계적인 공간에서 내 고정관념은 더욱 강해졌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학기 초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면서였다.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난 쫓기는 사람처럼 수저와 포크를 세팅하고 부랴부랴 물을 따랐다.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웃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 내 수저는 내가 깔게”

아차 싶었다. 카카오 캐릭터 어피치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점심메뉴로 왕돈가스가 나왔다면 손 사용이 불편한 친구 대신 고기를 썰어주는 것이 맞다.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면 작은 그릇에 찌개를 덜어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까지도 내가 나서서 해버리면, 그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배려랍시고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었다.

그 날 이후 난 템포를 조금 늦췄다. 먼저 나서는 대신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친구가 부탁하면 그 때 움직였다. 그와 일상을 함께하며 대단한 배려는 필요치 않다는 걸 알게됐다. 속도를 맞춰 천천히 걷고, 초록불이 깜빡거리면 뛰는 대신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술자리에선 그의 말을 경청하며 느긋하게 맥주를 홀짝이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필요한 건 배려가 아닌 존중이었다.

이제 우린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저 이야기는 10년 전 일이 됐다. 각자 일에 바빠 자주 보진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우린 사는 게 겁나게 힘들다고 투덜대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 이슈를 진단하고, 조금은 덜 오글거리는 시를 써서 SNS에 올리고, 남들에게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난 장애인이 아니기에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친구로 일상을 함께하며 깨달은 한 가지는 있다. 주변에 장애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장애인이라는 ‘기호’로 보기 전에 ‘사람’으로 알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그가 가진 고유한 성격과 취향, 가치관을 보는 대신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에만 몰입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 그건 너무 손해 아닌가.

과잉된 배려나 지나친 관심이 걸러진 보통의 만남 뒤에는, 누가 먼저 수저를 깔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내가 깔든 네가 깔든, 우린 어쨌든 같이 밥을 먹으러 만났으니까.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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