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7행시 한번 지어보자.

이나케(부리나케) 떠나는 그의 등 뒤로
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씁쓸한 이별노래
데이가 내일이면 좋았으련만
고 싶은 그대는
르르 떠나는구나.
요일 오후에 나만 홀로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서서
허허허- 눈물만 쏟아내누나.

이 역을 설계한 사람은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었을 것이며
이 역을 지은 노동자들은 충실한 사명감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러시아의 모든 기차역(나아가 유럽의 대부분 기차역)은 이처럼 중세풍이기 때문이다.

옛날의 허름하고, 불편하지만 낭만적이었던 기차역이 KTX 덕분에 차츰 사라지고 날렵한 현대식 유리건물로 탈바꿈하는 한국에 비해 러시아는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면 모스크바까지 열흘이 훌쩍 지난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 그곳에서 기차를 타면 되는데.... 계속 달리기보다는 몇 군데 내려서 구경을 하고 다시 기차에 오르는 사람이 많기에 정확하게 며칠이 걸린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어찌되었든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대륙을 횡단해보아야
죽는 날 후회하지 않는다.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길고 긴 대륙 횡단을 기다리는 열차들. Ⓒ김인철
Ⓒ김인철
하바롭스크를 관통하는 아무르 강. 국경을 마주한 중국에서는 헤이룽강, 우리에게는 흑룡강(黑龍江)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 강은 유람선 등이 운행될 정도로 넓고 깊다. 강가 자갈·모래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김인철

감히 앉지 말라

그것은 신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태도다.
러시아의 많은 성당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으며
누구나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
단,
남자는 모자를 벗어야 하며
여자는 미사 손수건을 머리에 둘러야 한다.
손수건이나 스카프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여성을 위해 문 앞에서 빌려주기도 한다.

성당 안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벽화가 많고 기념품 가게도 있는데
의자는 없다.

앉아서 미사를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 앞에서 겸손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꼭 의자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신 앞에, 타인 앞에, 자연 앞에,
세상 앞에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정교(Russian Orthodox Church)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천년 전인 988년에 블라디미르 대공이 러시아의 안정과 통일을 위해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를 택한 후 러시아의 국교가 되었다. 러시아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성당이 있으며 가장 유명한 곳은 모스크바의 바실리 대성당(St. Basil's Cathedral)이다.

밤 9시 35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횡단열차가 첫 기착지인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10시 18분. 모처럼 ‘외출’ 나온 병사의 마음으로 나들이에 나서 들른 곳은 성모승천사원(프레오브 라젠스키 사원· Spaso-Preobrazhensky Cathedral in Khabarovsk). 인구 50만 명의 소도시 최대 명소이자, 러시아에서 3번째로 높다는 사원으로 최대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성당, 사원, 교회 등으로 불리는 러시아정교회 건물에는 의자가 없어 모두가 선 채로 의식을 진행한다. Ⓒ김인철
Ⓒ김인철
우리나라에서 교회 건물이 흔히 보이듯 러시아에서는 열차가 도시를 지날 때면 밤이든, 낮이든 돔 형식의 러시아정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김인철

Ⓒ김인철

* 성당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이며, 기념품 가게에서는 오직 ‘러시아루블’만 받는다. 달러, 신용카드, 유로화는 받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많으므로 현금을 미리 준비할 것.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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