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곳곳에 남아 있는 레닌의 흔적

공산주의를 창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은 없을지라도
- 우리가 가보지 못한 어디엔가 있기는 있으리라 -
훗날 들은 바에 따르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Bolshoi Teatr 러시아국립아카데미대극장) 앞에 마르크스 동상이 있단다. Bolshoi는 ‘크다’는 뜻이다.
마르크스+엥겔스 동상은 독일 베를린 구시가지의 ‘붉은 시청’(Rotes Rathaus) 근처에 있다고 한다.

히틀러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스탈린의 동상은 없을지라도
- 어디엔가 있기는 있으리라 -
1992년 1월 1일 소련이 정식으로 해체된 이후부터 스탈린의 청동 동상은 차례차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상이 철거될 때 한 러시안은 이렇게 소망을 말했다.
“우리는 소련에서 가난하게 평등했지만 이제 저 철거된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쇳물에 녹아 우리의 생활이 보다 풍족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러나 그 소망과 달리 레닌의 동상은 여전히 부지기수로 많다.
근엄한, 멋진, 강인한
레닌 동상들은 소련(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蘇聯)의 과거를 입증하고,
러시아의 현재를 웅변하고 있으며,
앞날 또한 보여준다.

레닌은 뇌일혈 발작을 일으켜 2년 동안 병을 앓다가 1924년 1월 21일에 죽었다.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아내 나타샤 크루스프카야에게 했던
“잭 런던의 이야기를 더 읽어 주시오”였다.
잭 런던(Jack London)은 미국의 소설가로 늑대 이야기를 담은 <야성의 부름>이 가장 유명하다. 레닌이 죽기 전에 읽고 싶었던 책은 어쩌면 이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가 한 유명한 어록
“국가가 있는 한 자유는 없다. 자유가 있을 때는 국가가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섬뜩한 말과 비교하면 마지막 유언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과연 누가 레닌의 뒤를 이어
동상의 주인공이 될까?

* 가장 확실하게 스탈린의 동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조지아(그루지아)공화국의 고리(Gori) 광장에 있는 스탈린박물관(Joseph Stalin Museum)이다. 이곳이 스탈린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노보시비르스크 도심 광장, 모스크바 야로슬라브 역 광장, 그리고 횡단열차가 잠시 정차했던 벨로고르스크 역에서 만난 레닌 동상들과 건물 외벽의 부조물.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예카테린부르크 도심 광장에 설치된 무명의 노동자 · 군인 동상. Ⓒ김인철

낯선 도시의 낯선 동상들

이름 모를
- ‘이름 없는’이 아닌 -
전쟁용사 같기도 하고

조국 건설의 주역 같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을 영웅시한 선동주의 같기도 하고

여하튼
잘 만든 동상이
혁명광장에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찍을 뿐
정작 러시아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표현을 빌리자면-
“소 닭 보듯 한다.”

그렇다면 이 동상을 세운 이유는,
국가에 충성하라는 선동이 맞지 않을까?

러시아 곳곳에는 무수히 많은 동상이 있으며, 벽에 붙은 동판 또한 즐비하다. 어쩌면 유럽 전체가 그러하다. 동상이 많지 않은 아시아나 남미 국가들에 비해 문화적 소양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해서일까?
정확히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관광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선생 유허지 기념비. 국악인 서명희 명창이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가자를 대표해 선생의 유지를 창(唱)으로 부르며 숭고한 뜻을 기렸다. Ⓒ김인철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울타리 주변에 설치된 안중근(1879~1910) 의사 기념비.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고 새겨져 있다. Ⓒ김인철

독립운동의 서글픈 발자취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소멸된 것은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경술국치(庚戌國恥).
그때부터 의기로운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독립운동은 그보다 20여년 전인 189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생명을 내던지며 활동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는 그들의 유적지가 많다. 위쪽은 이르쿠츠크(Irkutsk) 한식당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다.

안 의사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의 하얼빈(哈爾濱)에서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해 한국 독립의 뜻을 만천하에 알렸으나 1910년 3월 26일 영면했다. 어떤 이유로 그의 기념비가 이르쿠츠크에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식당 주차장에 외롭게 서 있는 비석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나마 앞에 놓인 백합 한 송이가 처연한 마음을 달래줄 뿐.....

열차 생활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언제든 어디에서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가슴을 뛰게 해준다.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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