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바이칼(Lake Baikal)

그대의 눈보다 푸른 바이칼

태양이 그 속으로 속절없이 떨어지는 광활함을 보았노라.
누군들 바이칼 앞에서 초라해짐을 느끼지 않으랴. 

평생 이렇게 넓은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여행은 축복받은 일이오,
평생 이렇게 투명한 호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여행은 감탄할 일이다.
동전 하나를 떨어뜨리면 10m 밑바닥에 있어도 숫자가 또렷이 보인다.
깊은 물에 잠긴 돌의 무늬와 푸른 이끼가 마치 지도처럼 보인다.

최초 목격자에 의하면,
바이칼은 대륙횡단열차가 이르쿠츠크를 통과하던 새벽 3시 즈음에 처음 나타났다 한다. 잠에서 부스스 깬 사람들은 열차의 복도 창가에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시가 될 때까지 그 구경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하루종일을 달려도 호수는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기차에서 내려 바이칼에 손을 담그고, 용감한 사람은 물에 풍덩 뛰어들고, 작은 보트에 올라 호수 한가운데까지 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패트병에 물을 담아 돌아왔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래 간직하면서 그 푸르름을 길이 기억하겠다는 소망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러시아의 도시들이 비교적 깨끗한 것과 달리 바이칼 주변은 약간 지저분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해변에서 끝없는 바다를 본 것보다 내륙 한가운데에서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본 것이 더 깊은 감동을 주기에 용서할 만하다.

* 바이칼에는 전 세계 민물(담수)의 1/5이 담겨 있다. 표면적은 북미 5대호의 13%에 불과하지만 물의 양은 5대호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많기 때문에 ‘세계의 민물 창고’ 혹은 ‘시베리아의 푸른 눈’, ‘성스러운 바다’라 불린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의 백미는 열차에서 맞는 바이칼 호수와의 만남이 아닐까.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열차가 하바롭스크와 벨로고르스크를 거쳐 3박 4일 만에 바이칼에 도착한 때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무렵, 서서히 해가 올라오면 열차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열차는 이르쿠츠크에 정차할 때까지 오른편에 바이칼을 끼고 한나절 넘게 질주한다. Ⓒ김인철
시간이 지나 어둠이 가시면서 바다처럼 넓은 바이칼 호수가 푸른빛을 찾아가자 ‘시베리아의 진주’니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니 하는 바이칼의 별칭이 왜 생겨났는지 실감하게 된다. Ⓒ김인철
Ⓒ김인철

이것은 자유다

여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환호를 내지른다.
소년들은 알몸으로 호수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거리낌 없는 여자는 비키니를 입고 자갈밭에 엎드려 일광욕을 즐긴다.
한 남자는 물 위를 떠다닌다.

호수를 사랑하는 방식은 각자 달라도 결국은 자유를 갈망한다.

새처럼 높이 날아오르든
바다 깊숙이 들어가든
엎드려 땅만 바라보든
- 삶의 방식이 각자 다르듯 -
한없이 자유로운 것은 그들에게 드넓은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바이칼을 즐긴다.

●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바이칼 호수는 그저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느끼는 대상이다. 호숫가 자갈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또 둥근 기구 안에 들어가 물 위를 걷는다. 용감한 여인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그네에 몸을 맡긴 채 호수 건너편을 바라본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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