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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대화법[이하연의 하의 답장]
이하연 | 승인 2019.09.03 10:25

‘아 그 얘기는 하지 말걸.’ 

약속이 지나치게 많을 때 종종 드는 생각이다. 많은 말을 하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경우, 말이 많으면 실수도 덩달아 늘어나는데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숙하기 때문이다. 말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해 위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행동을 조절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먼저, 전반적으로 삶에 여유를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일과 돈과 술이 대표적인 세 가지다. 일을 줄여야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말단 사원인 내가 일을 줄일 수는 없고, 대신 일의 속도를 줄인다. 부스터를 잠깐 빼놓으면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씀씀이를 줄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취준생 때 마실까 말까 고민했던 하루 두 잔의 커피쯤이야 대수롭지 않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잦은 음주와 과음은 때때로 사고의 여유를 빼앗아 가는데―어디까지나 때때로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체력도 같이 빼앗아가므로 삶에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잠시 술을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픽사베이

자, 이제 내가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났다. 길거리로 나간다. 모르는 동네라면 금상첨화. 제각각의 모양으로 널린 간판도 쳐다보고 하늘을 사정없이 그은 전봇대 줄도 응시한다. 생각보다 낯선 것들이 많이 보인다. 호기심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걷다 지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책 읽다 지쳐 커피 두 잔을 하고 나면 멍해진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을 놓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난 이 느낌이 좋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특정 몇 가지 생각들은 중복적으로 떠오른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다. 하지 않았다면 혹은 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따위의 후회들. 

내 말만 앞세우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자신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장에 닥친 업무량이 너무 많아 버겁다고. 취업 준비에 지쳐 안개가 자욱한 길만 걷고 있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 미치도록 외롭다고.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에 아침에 눈을 뜨기도 싫다고. 굳이 나는 그들에게 해결책 비슷한 걸 제시했어야 했을까. 비슷한 경험이란 답시고 나의 옛 기억을 끄집어냈어야 했을까. 수도 없이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어도 여유가 없다면 곧 잊어 먹고 만다. 

그들의 말에 공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공감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마땅하다. 경청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말을 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결이 다른 에너지랄까. 식사 시간을 떠올려보자. 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하느라 밥을 먹지 않는다. 먹지 않아도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듣는 사람은 들으면서 밥을 먹는다. 마치 듣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처럼.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아 그 얘기는 들어 줄걸.’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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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연  slimm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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