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은퇴 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많은 중요한 것들을 자신이 직접 은퇴하면 알게 된다.

이런 후회와 함께 “은퇴 전에 진작 알았다면 지금 생활이 달라졌을 텐데“라고 아쉬워한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직전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시간의 역설' 즉,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덜 지루하고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자.

남의 얘기도 듣고 자료도 찾아 보고 테스트도 해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보다 슬기로운,나에게 적합한 방법들을 찾아보자.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 아닌가?

이번 글에서는 일반론보다는 내가 찾은 방법들에 대해 주로 얘기할 것이다.

Ⓒ픽사베이

미리 얘기해 두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위 노는 놈, 고상한 말로 한량 끼가 다분했다.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겁 없고 잡기를 무척 좋아하고 공부 말고 노는 것은 뭐든 좋아했었다. 한마디로 공부 빼고 다 잘했다. 직장생활 할 때도 제 버릇 남 주겠나? 일 빼고 다 잘 했다. 특히 혼자서도 잘 놀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스트레스 덜 받고 즐겁게 잘 놀고 잘 살았던 것 같다. 은퇴 후 일 없이 노는데 최적화된 인간형이라고나 할까?

은퇴 전에는 이런 나의 성향이 산만하고 조직 부적응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또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던 것 하던 대로 그냥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 반대로 너무 많아서 줄이고 선택해야 할 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대부분은 나와는 사정이 180도 다르다.

하던 것, 하고 싶은 것,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거나 적어서 문제이다. 

실제로 유력 금융기관 산하 은퇴연구소에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은퇴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의 순서가 1위 TV시청, 2위 인터넷, 3위 SNS로 나온다.
실로 충격적인 결과다. 위의 1,2,3등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쉽게 돈 많이 안 들이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시간이 잘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습관으로 굳어지면 헤어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게임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처럼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분명 그들에게 필요한 일거리, 활동거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고령화 사회에 제대로 대비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클 것이다. 그러나 1차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은퇴는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는 것이니까. 엄밀히 말해 정부도 남이다. 남에게 나의 은퇴 후를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그러나 절대 스스로를 원망하지도 자책하지도 말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준비하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에게 남아 도는 것이 시간 아닌가?

본인의 성격, 취향, 선호에 맞는 취미와 활동을 준비해야 한다. 노는 것에도 관심, 노력, 요령, 준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복지 수준이 높고 비교적 은퇴시스템이 잘 된 유럽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 은퇴자들에 비해 비교적 풍요롭고 즐거운 은퇴 생활을 한다. 여행, 취미 활동 등으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제대로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젊어서 잘 놀던 놈들이 은퇴 후 나이 들어서도 잘 놀 수 있다.

학창시절 집, 학교, 도서관과  직장 다닐 때도 일, 가족만 알던 범생이라고 절대 포기 하지는 말자.

범생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이, 직장상사가 시키는 건 잘한다. 그러니까 범생이인 것이다. 속는 셈치고 내가 경험한 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보시라.

나는 5년 이상 은퇴준비를 했다. 재무계획보다는 비재무계획을 중점적으로. 

왜냐고? 재무계획은 어느 정도 준비하면 별로 할 게 없다. 그냥 실행만 하면 된다. 계속 고민하고 계획 짠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 없던 돈이 갑자기 더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은퇴할 시기에 짜는 재무계획은 대부분 소비계획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가진 것을 까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잘 배분해서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계획이 전부인 것이다.

반면 비재무계획은 준비하는 만큼 계획하는 만큼,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나의 은퇴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 경제학적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재무계획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일정 정도까지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투입된 노력에 상관없이 결과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비재무계획은 시간이건 노력이건 투입한 양에 비례하여 아웃풋이 나온다. 어쩌면 은퇴 후 너무나 뻔하고 단순한 재무적 측면보다 비재무적 측면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고 변수도 많고, 그래서 삶의 질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 경우가 그렇다. 비재무적인 영역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꾸준히 준비한 덕에 남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은퇴 생활비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거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보면 옛 조선 선비의 말을 인용한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나는 젊은 시절 이 서문에 꽂혀 광 팬이 되었다. 신간이 출간 될 때 마다 책방으로 달려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만난 것은 내가 여행자로서 은퇴생활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답사기에 소개된 코스대로 십 수년 이상 답사여행을 다녔고 더 많은 정보와 느낌과 감동을 위해 여행 전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었다.

유럽 여행을 갈 때도 여행 가기 몇달 전부터 방문할 곳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거의 암기할 정도로 반복해서 보았고,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성당과 건축이 메인 테마이기에 건축에 대한 책, 유럽 역사에 대한 책(솔직이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교양 만화 보다 더 유용한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을 읽었다. 유럽 여행 중 이런 경험을 할 정도로...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많이 와본 곳 같은 익숙함.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이처럼 왜곡 되기가 쉽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직접 본 것과 다큐를 통해 본 것을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으로 기억할 만큼...

어렸을 때 본 토탈리콜이라는 영화에서처럼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든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그런 서비스가 상용화된다면 나는 평생을 기생 옆에 끼고 경치 좋은 정자에서 술 마시며 시를 짓던 조선시대 이름없는 한량의 기억을 주입하고 싶다.  

다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돌아와서, 이 책은 단순히 감명깊게 읽은 책 정도가 아니다.
내 인생의 바이블이다.

요즘은 너무 흔한 말이 되어 해외 여행을 가보면 여행 가이드라면 누구나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있잖아요 그러니 가이드 설명 잘 들으세요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다. 적용의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의 나의 글에서 심심치 않게 반복해서 이 말을 인용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읽어봤겠지만 은퇴 전후로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읽는 것 자체가 시간을 잘 가게 하는 또 하나의 활동이다.

토지 만큼은 아니어도 열 권 이상의 제법 많은 분량이다. 또한 소설과 다르게 소화하면서, 필요한 경우 자료도 찾아 보면서 읽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몇 달은 지루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본인의 상황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 올 것이다. 특히 은퇴 후 어떻게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해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문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나의 경우처럼 인생의 해답을 줄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실용적 측면에서 국내 여행의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여행지 정보만 나열된 다른 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부하는 여행, 깨달음이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유홍준 선생은 석좌교수와 문화재청장을 지낼 만큼 문화적 유산, 역사적 유물 유적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이다. 게다가 말발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3대 구라쟁이 중 한 사람이다. 나머지 두 구라쟁이는 백기완 선생과 황석영 작가이다.  

특히 시간이 많은 은퇴자에게는 이 책과 똑같이 답사 여행을 권하고 싶다. 시작 하면 순식간에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훅 하고 지나간다.

은퇴 후 남아도는 시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라는 주제에 이보다 더 명쾌한 해답을 주는 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이 글의 본론이다.

은퇴 후 13만 시간 하루 12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 무엇 혹은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그 대답을 얻기 위한 방법과 원칙을 얘기하겠다.

독자 여러분은 내가 제시하는 원칙과 방법에 따라 자기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의 활동들로 스케줄을 채우고 하루하루 실천하면 된다. 마치 은퇴 전 직장생활 할 때 그랬던 것처럼...준비 되었는가?

우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시작해 보자.

1. 초등학교 방학 때면 제일먼저 하던 일, 나의 일일 생활계획을 짜보자.

꿈나라, 아침, 휴식 이런 생존을 위한 필수항목과 함께 2-3 시간 단위로 활동의 영역
즉 카테고리를 표시하라(하루에 보통 3-4개의 시간이 나온다. 아침 식사 전,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 저녁과 취침 사이)

2. 활동의 리스트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서 작성하라.

- 필수항목 1. : 육체 건강을 위한 활동(운동, 피트니스, 등산, 줄넘기 등)
- 필수항목 2. : 정신 건강 및 교양을 위한 활동(독서, 공부, 글쓰기, 외국어 공부 등)
- 선택항목 1. : 이미 할 줄 알고, 즐기고 있는 활동(당구, 골프, 등산, 테니스 등)
- 선택항목 2. : 개인의 관심, 선호, 취향에 따른 취미 활동 중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
(새로 시작하는 활동은 배우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 사회 활동 : 종교, 동호회, 봉사활동 등

다음 회에서는 어떤 원칙과 우선 순위로 일일 생활계획을 작성하는지, 개인별 선호도에 따른 가중치를 어떻게 적용 하는지 등과 같은 실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나만의 은퇴 후 일일 생활계획표를 만드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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