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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의 무게감[이주호의 청년실격]
이주호 | 승인 2019.09.04 10:49

[청년칼럼=이주호] 같은 말이라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린다. 나에겐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그렇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보거나, 답답한 사람들을 겪을 때 쓰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니, 뭐 얼추 맞을 수는 있는 말이다.

“감기 걸릴 것 같다”라는 느낌은 잘 안다. 비가 내리는 데 우산이 없어 몸이 홀딱 비에 젖을 때면 으스스 한 느낌이 꼭 감기에 걸릴 것만 같다. 침을 삼킬 때도 편도가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목감기에 걸릴 것 같은 징조다. 열이 나거나, 코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추운데 오래 있던 날이면 정말이지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자기 전 감기약 한 알을 먹고 잠을 잔다. 

그런데 암은 감기와는 분명 다르다. 암은 세포주기가 조절되지 않아 계속해서 세포분열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따라서 감기랑은 다르게 암 걸릴 것 같은 느낌은 조금 더 느리고, 천천히 고통스러우며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기분일 거다. 게다가 감기에 걸려 본 사람들은 많아도 몸 안에 악성종양을 가져 본 경험은 흔치 않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이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픽사베이

나는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보통 명언이나 최후의 발언을 남기지 “이제 곧 죽겠다”라곤 하지 않는다. 그건 죽지 않을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다. 과제하다 죽을 것 같아,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와 같이.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도 그렇다. 저 말의 기저엔 암에 안 걸릴 거라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린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사망 원인에서도 1위가 암이라고 한다. 그러니 구태여 “암 걸릴 것 같다”고 하지 않아도, 실제로 사람들은 암에 걸리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사망한다.

어쩌면 저 표현 자체가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관용어“가 된 것 같다. 그건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암 발생률 자체가 높아서 생긴 건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누군가 처음에 재치 있는 척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을 썼고, 그리고 지금은 말기 암 환자의 몸처럼 온 사회에 퍼져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저 말을 할 때면 불편하다가도, 너무 유난 떠는 걸까 싶어 넘어가곤 한다. 나 역시 가족에 암 환자가 생긴 후에야 거슬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와서 싫어하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런데 저 말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엄마는 어쩌다 정말로 암이 생겼을까. 내가 엄마였으면 좀 억울했겠다.

이주호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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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leejh1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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