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사장에 이어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무죄선고를 받았다. 한 전 총리는 ‘무죄 2관왕’이 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런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은 정 전 사장이나 한 전 총리 뿐만 아니다. 민간인 사찰을 당한 사람, 쥐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재판에 넘겨졌던 사람 등등 많은 사람이 박해를 당했다.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간 겪은 정신적 심리적 고통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본인들이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쌓여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내가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나에게 부당한 핍박을 가한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살고 출세하는데.. ”라며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가해자는 행복하고 피해자는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에 우리는 대부분 공감한다. 가해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오래 잘 사는 데 정의롭고 올바르게 산 사람들은 도리어 일찍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세상이 왜 이래?” 묻는다. 그리고 대충 눈치 보면서 편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믿게 된다.

이를테면 고문당한 김근태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고문한 사람은 목사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면서 여유 있게 살아간다. 정 전사장을 무리하게 기소한 검사들은 출세를 거듭했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아직도 고위직에서 큰 권세를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여전히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좀더 들여다보면 다르다. 부당하게 남을 쫓아내고 박해한 사람들은 이제 부끄러워할 처지가 된 것이다. 김근태를 고문한 ‘목사’는 조문장소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 아닌 사과의 뜻을 표했다. 물론 “책임지겠다”고 했던 종전의 말과는 달리 책임지는 자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무리하게 기소했던 검사들도 침묵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위들에 대한 결산요구서가 머지 않아 그들에게 내밀어질 것이다. 이번 무죄판결은 그 결산서 가운에 일부일 뿐이다.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면 그들에게는 본격적인 결산 요구가 닥칠 것이다. 그 정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시행한 일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도 앞으로 재조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부는 청문회에 넘겨지고, 일부는 특별검사의 손에 맡겨질 것이다. 지금까지 무리한 사찰과 기소를 주도했던 인물들은 이제 그 자리에서 증언을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변명을 할 것이다. 그렇게 변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여겨질 것이다. 게다가 거짓증언까지 하면 추궁이 뒤따른다.

이런 과정을 무사히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친지나 시민들로부터 냉정한 눈길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친지나 시민들은 말이나 눈길로 “당신 그 때 왜 그랬어?” 하고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그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모종의 대답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려고 애쓰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행복했던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보였을 따름이다. 실은 앞으로 오랜 동안 책임추궁에 시달리고 또한 스스로 수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깊은 회한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사실은 불행한 것이다. 짧은 행복 후에 찾아오는 긴 불행이다.

물론 이제라도 그런 긴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당한 사람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하고, 가능한 한 원상회복을 위해 애쓰는 것이다. 물론 원상회복이라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만 있으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마음자세가 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남을 한때 부당하게 박해했다”는 자책감과 스스로의 낙인을 조금이라도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이후에도 마음의 불안과 수치를 겪지 않고 그나마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그들은 회한과 자책감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번 두 무죄사건을 비롯해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무한할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저질러진 것이다. 아무리 막강해 보이던 정권이지만 결국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박해자들이 잊고 있었던 이 평범한 이치가 요즘 새삼 천금의 무게를 가지고 다가온다. 무한할 줄 알았던 정권이 이렇게 유한하고, 그 끝이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스스로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피해자가 행복하고 가해자가 불행하다고 한 옛 성인의 말은 진실로 옳은 것 같다. 나도 이제까지 그런 말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집장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