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바이칼(Lake Baikal)

강에 달을 띄우다

저녁해가 어스름 지려 할 때 배에 달을 싣고 강 위를 떠다닌다.
강물은 소리없이 철썩이고
달은 아직 아무런 빛을 발하지 않는다.

저 달 속에 토끼도 없고, 계수나무도 없지만
물 위에 희미하게 비추는 달 그림자는
불을 밝히면 더욱 환해지리라.

강에 달을 띄운다는 상상 밖의 상상을 실천한
사내에게 찬사를 보낸다.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한 유일한 강인 안가라강 상류에 달 실은 조각배가 떴다. ‘하나의 대륙, 하나의 길’을 기원하는 달이다. 허강 중부대 교수가 즉석에서 ‘유라시아 대륙 달빛 드로잉’이란 제목의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했다. Ⓒ김인철
Ⓒ김인철

하나는 마음을, 하나는 몸을 지켜준다

생선과 보석은 한 끗 차이.
물고기는 바다에서 건져올려 먹기 좋게 다듬어졌고
보석은 땅에서 캐어내 보기 좋게 다듬어졌다.
물고기는 우리 몸을 지켜주고
보석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비록 빛깔이 나는 돌멩이에 불과할지라도.

바이칼 호수 앞에 작은 시장이 있다.
정확하게 양분된 시장의 왼쪽은 선물가게들,
오른쪽은 생선가게들이다.
사는 사람은 없고 구경꾼만 많아서 텅 빈 점포가 쓸쓸하다.
무엇이라도 하나만이라도 산다면
그대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

바이칼 호수 인근의 작은 어시장. 바이칼에 서식하는 연어과 어류인 ‘오물’ 등 말린 생선을 가득 쌓아놓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여기에서 땅이 나뉘어진다

땅의 경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사람 마음의 경계는 신이 만든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랑과 미움, 고마움과 증오, 감사와 저주의 경계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사람의 의지로 제어되지 않는다.
사랑이 한순간에 증오로 변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얄팍한 감정의 발현이다.
그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감정의 변화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산이 가로막고, 강이 가로막았을 뿐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는 하나의 땅이다.
단지 험난한 산맥과 굽이치는 강이 너무 많아 인간의 흐름을 방해해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어디일까?
학자들은 식물(나무, 풀, 꽃들)의 분포 상태로 아시아와 유럽을 나눈다는데... 그것이 맞을까?

이 경계탑은 스베르들롭스크에 있으며 1837년 알렉산드르 2세의 방문을 기념해 우랄 지역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경계비다.
북위 56°52′13″, 동경 60°02′52″에 세워져 있으며 이곳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아시아, 왼쪽은 유럽이다.
그러나 ... 사실 그 의미는 별로 없다고 본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증오로 만드는 실마리는 시간이 흐르고 보면 아무런 의미없는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버리고, 나를 버릴 때 사랑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한 발 내딛으면 유럽, 한발 물러나면 아시아인 것처럼,
나를 버리면 사랑이요, 나를 내세우면 증오가 된다.

여기에서 서울까지 5,250km. 유럽/아시아 경계선에 세운 이정표는 한국이 처음이다. 앞으로 이 팻말 아래에 무수히 많은 이정표가 덧붙여지리라. 첫 단추를 끼운 한국의 유라시아친선특급 원정단이 자랑스럽다. 

러시아 중부 스베르들롭스크 주(州)에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탑. 우랄산맥의 한복판에 위치한 결과 동식물 생태계가 좌우로 확연히 달라진다. 사진에 ‘아시아(Азия)’라는 러시아 글자가 또렷하다. 여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5,250km.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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