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논객칼럼=이영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사회를 퇴행시키는 주된 원인은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 불감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진보나 보수 성향과는 무관하게, 나아가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거짓말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어서인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구업(口業)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화살 같아서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탈무드의 격언이 무색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든다.

필자는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상을 지배하게 된 데는 분명 그럴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 문제를 사회심리학이나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원인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경제학의 기본원리라 할 수 있는 비교우위와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거짓말이 득세하는 현실을 살펴보려고 한다.

Ⓒ픽사베이

우선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비교우위란 원래 국제무역에 적용되던 용어로서 간단히 말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에 특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현재 한국은 전자제품에서, 미국은 서비스업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이 원리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야구에도 특별한 소질이 있어서 잠시 은퇴했던 시절에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그렇지만 조던은 농구에 비교우위가 있기에 결국 다시 농구선수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든 국가든 비교우위의 윈리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단, 이 경우 전제조건은 의사결정에 따른 비용과 편익이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예기치 않게 진실과 거짓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필자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센티브의 문제이기도 하다.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진실을 구축(驅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사회규범이라는 비금전적 인센티브가 엉성하게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말이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대한 법적 제재가 미약한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곧 법과 제도가 잘못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문화적 환경이나 제도적 여건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거짓말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바로 비교우위와 비용-편익의 논리인데,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필자는 비용과 편익에는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모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비용과 사회적 편익을 무시하고 개인적 비용과 개인적 편익만을 고려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유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회적 비용과 사회적 편익을 고려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갑은 진실과 거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자. 개인적 비용과 개인적 편익만을 고려한다면 갑에게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비교우위가 있는 반면, 사회적 비용과 사회적 편익까지 고려한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갑이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거짓을 말할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갑이 비용과 편익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거짓말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반면, 사회적 편익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거짓말로 인해 사회적으로 누군가 부당한 비용을 부담하거나 부당하게 편익을 상실하게 된다는 말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부정적 외부효과’라고 한다.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볼 때 거짓말의 총비용(개인적 비용+사회적 비용)은 총편익(개인적 편익+사회적 편익)을 능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에서 비용과 편익을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에 비교우위를 갖기 어렵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 관점에서 비용과 편익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적 이해관계가 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적 영역에서 주요 임무를 맡는 사람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라면 말과 행동을 선택함에 있어서 마땅히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을 자신의 의식에 철저하게 각인시켜놓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삼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필자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공익 운운하면서 교활한 방법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거짓말이다. 이들이 흔히 내세우는 거짓말의 명분은 법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것인 바, 이런 변명에는 이들이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는 않는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엉겁결에 스스로 공익보다는 사익을 더 중시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예컨대 어떤 정치인이 한 여성과 불륜관계였던 적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던 사실이 불거지면서 자신의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사건으로 부각되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었다고 하자. 그는 법정에서 불륜관계를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볼 때 그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사회적 비용이나 편익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도 입만 열면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겠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다소 논리적인 비약이 있음에도 한국사회에 거짓말이 난무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 논리가 깔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도덕적 훈계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과 거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비용이나 편익을 고려하도록 유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컨대 거짓말로 인한 사회적 파장의 정도에 따라 무거운 벌이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한 것이나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한 것이 훗날 거짓말로 드러날 수 있다. 이 때 이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였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를 통해 거짓말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거짓말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공유광장(www.iksa.kr) 운영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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