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뒤안길]

[논객칼럼=유세진] 중국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범죄인을 중국으로 보낸다는 송환법 개정 추진에 반대해 지난 6월 9일 시작된 홍콩의 반정부 시위가 9일로 4달째로 접어들었다.

14주 넘게 계속되는 시민들의 거센 시위에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4일 송환법 추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홍콩 시위대의 요구사항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 중앙정부로부터의 지침을 거부할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던 캐리 람 장관으로서는 당초 시위의 명분이던 송환법 추진 철회를 통해 이제 그만 시위를 중단해 달라는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시도는 실패했다. 철회 발표에도 불구하고 발표 후 첫 주말인 지난 7, 8일에도 시위는 여전히 계속됐다. 8일에는 시위대가 홍콩의 미국 총영사관 앞으로 행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홍콩을 자유화시키라"고 요구했다. 홍콩의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화를 촉진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킬 것도 미 의회에 호소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제재까지 요구했다. 시위대는 5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송환법 철회 하나만을 수락하는 것은 너무 미미할 뿐만 아니라 너무 늦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5개 요구 조건 중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수락해야만 한다고 홍콩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시위대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원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홍콩 시위는 처음에는 송환법 반대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중국 반대와 홍콩의 민주화 요구로 성격이 바뀌었다. 송환법 추진보다 훨씬 중요한, 홍콩의 체제 변화라는 더 큰 문제가 걸린 시위로 변모한 것이다. 시위대는 이번 시위를 중국의 전제주의에 맞서 민주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으로 간주하고 있다. 5개 요구 조건 중 행정장관 직선제는 2014년 78일 간 홍콩을 뒤흔든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것이기도 하다. 5년 전의 우산혁명은 중국의 강경 방침 속에 홍콩 정부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만큼 중국으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중국은 지난 1997년 '1국가 2체제'(一國兩製)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앞세워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았다. 그러면서 홍콩이 영국에 할양·조차되면서 누렸던 정치체제와 기본 인권, 문화 스타일 등을 2047년까지 50년 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이런 것들은 중국 본토 국민들은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중국은 홍콩 주민들의 직접선거가 아니라 간접선거를 통해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홍콩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배후 조종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대로 홍콩을 통치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이 약속한 50년의 자유 보장기간 중 아직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를 비판하는 책들을 펴낸 서점 관계자들이 중국으로 납치되는 것을 지켜본 홍콩 시민들은 벌써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와 인권이 침해받고 위축되고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2047년이면 그나마 중국이 약속했던 기간도 끝나게 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태어났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나마 민주체제 속에서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살아온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홍콩 시위가 특별한 지도자없이 중고등학생을 포함해 대학생과 젊은이들의 자발적 참여로 사상 최장 기간의 시위를 기록하면서 송환법 철회라는 부분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한 원동력도 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홍콩은 중국 영토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며 어떤 분리주의 기도도 분쇄될 것"이라며 홍콩의 반정부 및 민주화 요구 시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일국양제 시스템이 실패했음을 용인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국으로선 대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대만과의 재통일 문제에도 일국양제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홍콩 시위대의 행정장관 직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중국 특유의 공산당 일당독재를 무너트리는 것으로 체제 변화를 용납하는 것이라고 중국은 인식하고 있다. 대만과의 재통일을 위해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중국은 홍콩 인근 선전(深圳)에 인민해방군 병력을 주둔시켜 시위 진압 훈련을 실시하는 등 홍콩 시위를 무력진압할 수 있음을 내비치며 시위대를 위협했었다. 하지만 끝내 무력진압에는 나서지 못했다. 무장병력의 투입은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등의 요구를 유혈진압했던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사태의 재연이 될 것이란 전세계적 우려와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라는 홍콩의 지위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도 무력 개입을 자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무력 개입도 할 수 없고 시위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콩 시위대의 입장이 밝은 것도 아니다. 송환법은 철회한다고 발표됐지만 나머지 요구사항들을 홍콩 정부가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처음 평화적으로 시작됐던 시위는 최근 들어 계속 격화되고 있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폭력 사태로 홍콩 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국 홍콩 시위는 어느 쪽이 먼저 지치느냐는 시간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럴 경우 시간은 시위대보다는 중국 정부의 편이 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시위대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홍콩 정부와 중국은 중국의 내정 문제라며 외국의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캐리 람 장관은 중국은 홍콩 시위 해결에 기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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