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보수 언론, 시위 서울대생,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최성해 동양대 총장

보수언론의 무자비한 폭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고군분투한 ‘주역’들을 꼽으라면 필자는 ▲보수언론 ▲시위 서울대생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 ▲최성해 동양대 총장을 들고 싶다. 이는 순전히 필자 개인적인 관찰이고, 판단이다. 

먼저 보수언론부터 보자. 장관 후보자 검증을 위해 지난 한달동안 이 나라 언론이 깻단 털듯 조국 신상털기에 요란을 떨었다. 장관 후보자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모지락스럽게 턴 사례는 세계 언론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한달간 장관 후보자 신상털기 기사가 118만건이라고 하니 인류가 생긴 이래, 아마도 지구가 생성된 이래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이런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아서 인류사적 기록을 남겼다고 본다. 이때 선봉에 선 언론이 대한민국의 유력 신문이라는 ‘조중동’과 ‘종편 방송’이다. 

이들 매체가 팔 걷어붙이고 조국 후보자의 신상을 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문재인의 개혁 참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치면 문재인을 꺼꾸러드릴 수 있다는 전략. 그래서 거론 자체가 짜증이 나지만, 이건 진보 보수를 떠나 정상이 아니다. ‘단독’ ‘특종’ ‘폭로’라는 이름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까발리고 밟고 부순, 그것을 말하기엔 정말 잔망스럽고 낯이 뜨겁다.

문재인 정권은 그들의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 자유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정파적 논리에 이렇게 화력을 총 집중하는 것은 상식의 도를 넘는다. 본질은 증발하고 오직 죽여야만 한다는 표독성. 공공재라는 정보를 편의적으로 가공해 보수 동맹군끼리 밥그릇 챙기는 이익집단화한 보도 태도. 언론이 아니라 정치집단임을 커밍아웃하는 것 같다. 대중은 세뇌될 수 있다는 근거로 99대 1의 무차별적 화력을 집중한 제작 태도는 한국언론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고 본다. 정책검증 등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보수 매체의 심부름꾼이자 행동대에 지나지 않았다. 조국 청문회에 관한 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이 임무 교대를 철저히 했다. 자유한국당이 법에 따라 무대를 깔았지만 애석하게도(?) 조연에 머물렀다. 보수언론의 혁혁한 전투력은 ‘악바리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따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후 오늘의 언론을 돌아보면 어떻게 비칠까. 아니, 10년까지 갈 것도 없다. 1-2년 후 오늘을 돌아볼 때, 혹 언론의 집단 광기에 사로잡혔다고 하지 않을까.

서울대생들 시위의 뒷 모습 

두 번째, 스카이대학, 그중에서도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장면이다. 저 시퍼런 군부독재 시절의 70년대와 80년대, 그들 선배들이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절규와는 너무도 생소한 모습이다. 의로운 일을 하는데 왜 굳이 마스크를 착용하는가. 선배들은 최루가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최루가스는 커녕 어떤 연막탄도 터뜨려지지 않았다. 태극기 부대나 보수단체가 “문재인을 체포하자” “문재인 때려잡는 결사대를 결성하자”고 외쳐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심지어 문재인을 죽이자고 떠들어도 내버려둔다. 옛 권위주의 시절이었다면 어땠을까? 쥐도새도 모르게 잡아 조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거나말거나 내버려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쓴다? 뭐가 두려워서? 정의롭게 나섰다면 어떤 영웅심으로라도 얼굴 내놓고 나서는 것이 인간의 야심 아닌가. 특히 청춘기의 청년은 자기 아우라와 깃발을 내세우고자 온 몸으로 전면에 나선다. 그런데 굳이 마스크를 쓴다. 창피하고 쪽팔린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시위를 하지? 그것 하나로 시위의 도덕성을 말해주는 것같아 안타깝다. 

서울대학은 중산층 이상, 고학력 엘리트 계급의 특권 세습의 ‘특수학교화’한 대학이 되었다고 보는 이가 많다. 자녀들에게 학벌 세습을 하는 조국과 다를 바 없는 ‘스카이 캐슬‘. 초·중ᐧ고등학생 때부터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온갖 사교육을 통해 특목고ᐧ외국어고ᐧ과학고에 입학하고, 스카이 진입을 위해 생활기록부도 풍성하게 꾸민다. 거기에는 고학력 부모의 학맥과 인맥이 동원된다. 이것이 국민적 상식처럼 인식되었다. 서민층 자제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풍경이다. 결국은 국민적 위화감과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스카이 대학생들은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끼리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빛나는 층위에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부모와 자녀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벌써 기득권의 한 자락에서 세상을 호령할 군림의 자세로 있다. 이러니 99대 1의 일방적 보도에도 많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고, 또 서울대ᐧ고려대의 촛불을 의아스럽게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울대 수시 입학생 4년동안 수상 경력 30개, 봉사 170시간, 동아리 107시간

서울대 학부생은 75%가 장학금 받고, 대학원생은 90% 가까이가 장학 혜택을 받는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60% 이상이 중상류층이라고 한다. 서울대 수시입학생들 4년간 평균값은 1인당 수상 경력 30개, 봉사 170시간, 동아리 107시간, 어떤 학생은 봉사 300시간이라고 보도되었다. 조국의 딸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부모의 재력과 학맥ᐧ인맥으로 스카이대학을 가기 위한 스펙을 쌓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독자는 “괜히 촛불들었다가 카메라 얼굴 찍힌 사람들 수시입학과정 털릴까봐 겁이 나서 복면을 했더냐”고 비아냥댔다. 

1960년대 미국의 흑인 투표권 쟁취가 흑인들의 투쟁으로 얻은 것으로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백인 지성들이 싸워서 거둔 결실이다. 흑인의 힘으로는 거대 백인 기득권 장벽을 부술 수 없었다. 월남전도 마찬가지다. 월남이 무너지면 아시아가 공산화된다고 미국 정부가 선전전을 펼 때, 미국의 위선을 세상에 고발하고 끝내 미국에게 패배를 안긴 주인공들이 다름 아닌 미국의 명문 대학생들과 양심적ᐧ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후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아사이 권역이 공산화 도미노에 빠진다고 했으나 더 큰 평화가 왔다. 한때의 적이었던 우리와도 3대 교역국이 되고, 우리의 총각들이 외국인 신부감 중 베트남 처녀를 가장 많이 데려오고 있다.

누구나 조국을 반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조국을 반대한다면 최소한 동일한 잣대로 다른 공인도 봐야 한다. 법무장관이기 때문에 깐다고? 그런 이유를 갖다 대도 같은 경로를 거친 더 험한 구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선택적 정의’가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명색이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 서울대학이라면 최소한의 균형감은 있어야 한다. 유복한 집안에서 온갖 혜택을 받고 자라니 벌써 기득권에 편입돼 편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인가. 아버지의 기득권이 세습되고, 그래서 그들이 먼저 진영 싸움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은 왜군이 아니다. 바로 왕과 사대부 기득권 세력이다. 왜구의 도전보다 내부 교란과 내부 총질로 이순신을 투옥하고 인간적 모욕을 주었다. 조국이 100% 완전무결하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목을 쪄누르고 있는 답답한 기득권 구조를 바꿔줄 현실적 대안이기에 그를 주목하는 것이다. 

서울대생들 낡은 기득권에 편입되었나 

한번 돌이켜보자. 조국은 가진 자의 수혜를 누리긴 했지만(그래서 이중적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의 악습구조 타파와 검찰ᐧ사법개혁의 밀알이 되겠다고 나섰다. 기득권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 모순을 극복하겠다고 나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선명하지 않나. 그것이 이중적이라고? 좌파는 좌파대로 살아야 하고, 우파는 우파대로 살아야 한다는 기계론적 유물론에 빠지자고? 이런 몰지각이 어디 있나? 배운 자라면 가진 것 유무와 상관없이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는 전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라면. 

서울대학생이라면 적어도 세상의 맥락을 짚을 줄 알았다. 남보다 더많이 책을 읽고, 더많이 공부를 해서 한국 최고의 대학에 들어갔다면 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빈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초라하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들이 더 부패한 세력과 일방적 편파보도 매체의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 그래서 절망스럽다. 어느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의 이상을 꿈꾸는 신비감이 사라졌다고 탄식했다. 이상주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벌써 낡은 기득권의 품에 안겼다고 안타까워 한다. 서울대학생의 행동 중 오늘의 서울대생들이 가장 생각없는 행동으로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최고의 명문 서울대생들이라면 좀더 높이 보고, 멀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마디만 더하자. 갈수록 지방 중소도시 중고교생들은 서울대학을 꿈도 꾸지 못하는 차별과 열악한 교육환경과 불평등 구조 속에 있다. 그런 현실을 한번이라도 대신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이기적 사고가 아니라 낮고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 함께 아파해본 적이 있는가. 보다시피 가진 자, 엘리트 부모 중심의 대입제도가 편성되고, 거기에 편입되지 못한 학생들은 본의아니게 피해자가 된다. 그에 대한 각성으로 그런 입시제도를 뜯어고칠 피켓을 들어볼 수 없는가. 

프로레타리아 독재만이 사회주의 초상인가 

세 번째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이번 청문회에서 ‘악바리’처럼 나서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유심히 살펴봤던 것은 ‘사회주의 발언‘ 때문이다. 그는 조국 후보자에게 80년대 운동권 시절, 사노맹에 가입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지금도 사회주의를 신봉하느냐고 따졌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다. 

사회주의 자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저 견고한 장벽. 빨갱이 증후군을 다시 소환하겠다는 추궁. 아니면 말고 식의 흘리고 넘어가는 힐난식 질문. 우리가 알다시피 사회주의란 지구 자본주의의 독식구조에 대한 반성으로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필자는 프로레타리아 독재식의 지식 밖에 아는 것이 없지만, 그것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서구사회에서 사회주의 가지고 시비 건다면 미친놈이란 말을 들을 것이다.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건드려보는 것은 극우세력에게 혹시나 공격할 밑밥을 던져주도록 유도해보는 질문이 아닌가. 그것은 인권유린의 흉기로 더많이 사용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속이 답답해진다. 사회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온 사회주의를 여전히 프로레타리아 독재만이 사회주의의 초상인 양 몰아가는 자세는 국민 지성을 너무 얕본 독선이다. 토지공개념,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 복지개념도 사회주의의 한 유형에서 파생된 정책 아닌가.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내부에 이미 깊숙이 침윤되어있다. 대명천지인 지금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되지 않았나?

‘교육학 박사’ 학위가 가짜라니? 

마지막으로 동양대 총장 최성해 교육학 박사 이야기다. 최성해 총장은 동양대에서 발급하는 표창장 중 자신의 ‘교육학 박사’ 직인이 찍히지 않은 것은 모두 가짜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조국의 딸 봉사 표창장에 ‘교육학박사’ 직인이 없으니 가짜라는 판정이다. 그런데 그 교육학 박사가 바로 가짜박사라는 것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있나. 자신의 교육학박사 직인이 없는 것은 절대로 가짜라고 말해놓고, 그 교육학박사 학위가 가짜라니, 꼭 무슨 마술에 걸려든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학원민주화가 어느 시절 얘기인데, 최성해 ‘교육학 박사‘는 25년동안이나 대학 총장 자리에 굳건히 앉아 있다. 사기업도 아니고, 그래도 종합대학인데 어떻게 4반세기 동안 총장 자리에 끄떡없이 앉아 있을까. 북한 세습체제도 아니고 25년 동안이라니, 그 구성원을 얼마나 얕보았길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하에서, 그리고 학원민주화 깃발이 휘날린 지도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장기집권 체제‘의 총장님이 계시단 말인가. 

그의 말 바꾸기는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분이 이 나라 대표적 보수주의자의 한 분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오만 거드름, 군림하는 권위의식..., 타락한 보수주의자의 전형성을 그에게서도 일정 부분 발견하고 씁쓸한 서글픔에 젖는다. 보수주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조국 청문회 과정에서 99대 1의 일방적 언론 지원을 받고도 오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세상은 거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밀고 나가는 투쟁에서 나온다. 도처에 덫을 놓고 방해하는 세력이 있지만 가시덤불, 잡초를 헤치고 나아가는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없이 의연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노무현 시대의 국민이 아니다. 시민의식이 진화했으니 깨어있는 시민이 늘어났고, 그래서 미래는 밝게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필자는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었지만 나라를 바꾸기 위해 거대 기득권과 싸우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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