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모스크바(Moscow)

호화찬란의 정수를 보여주다

무엇을 산다는 행위가 조금 망설여지는 곳이다.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유지하는 나라에서
백화점이 이토록 화려하고 크고 삐까뻔쩍해도 되는 것인가?
가이드가 ‘궁 백화점’이라고 일러주기에
옛날 제정 러시아 시대의 궁(宮 왕궁)을 백화점으로 개조한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궁이 아니라 굼(GUM)이란다. GUM은 Glavny Universalny Magazin의 약자다.
1890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니 자그마치 125년이나 되었다.
그 흔적을 계단에서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으면 대리석 계단이 움푹 파였을까?

계단 손잡이와 숍의 출입문, 분수 모두 아름답지만
복도와 난간에 진열해 놓은 꽃들이 특히나 아름답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비쌀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들기 때문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만족!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굼백화점. 러시아의 ‘최고급 백화점’이라는 명성답게 안팎이 화려하고, 관광객도 많다. 1890년부터 3년에 걸쳐 지어졌다니, 그 역사가 120년이 넘은 백화점이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크렘린

크렘린은 과거 백악관과 더불어 세계를 나누어 지배했던 양대 권력기관이었으나
지금은 관광명소의 하나로 바뀌었다.
물론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1992년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때 대학교수 한 명은
“이제 지구촌은 미국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라고,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예측은 빗나가
이제 지구촌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장이 되고 말았다! 

크렘린 앞에는 당연히 부동자세의 경비 병정이 있고
혹여 고위 관리들이나 푸틴을 볼까 싶어 얼쩡거리는 전 세계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당연히 푸틴을 보는 일은 없으리라.
백악관 앞에 하루종일 서 있어도 트럼프(당시에는 오바마)를 볼 수 없듯.

굼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크렘린. 크렘린의 남동쪽 성벽 중앙에 붉은색 화강암으로 쌓은 피라미드형 묘에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1870~1924) 유해가 안치돼 있다. Ⓒ김인철
굼백화점과 크렘린의 밤 풍경. Ⓒ김인철

러시아의 두 얼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되었으며, 약 1년 1개월 후인 1951년 7월 8일부터 휴전협정이 시작되었다. 159차례의 본회의와 500여 회가 넘는 소위원회 등 지루하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 25개월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협정이 맺어졌다.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UN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 주요 역할을 한 사람이 유엔주재 소련대사 말리크(Yakov Aleksandrovich Malik 1906~1980)이다. 그는 중공군의 철수에 반대표를 던졌고, 유엔방송을 통해 휴전협상을 제의했다. 미국이 이 제의를 받아들여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전쟁의 책임은 결국 스탈린과 김일성에게 있을 것이지만 휴전의 통로 역할을 한 사람은 말리크이고, 그의 동상이 모스크바 광장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도 멋있고 그 앞의 동상도 멋있어 엉겁결에 사진을 찍지만 그 남자가 한국전쟁의 핵심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깜짝 놀란다.
의아한 사실은 말리크는 1980년에 죽었고, 그의 업적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도
수도 한가운데에 동상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구글에도 등재되지 않은, 소련과 러시아인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위대함이 있는 것일까?

동상 건너편에는 수로가 있고 그 옆으로 낭만적이고,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고, 고급스러운 상가가 있다.
청계천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에는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선물 가게가 즐비하고 가족과 연인들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근엄하고, 한쪽은 즐겁다. 이것이 러시아의 두 얼굴일까?

붉은광장 초입에 서있는 야코프 말리크(1906~80) 동상. 한국전쟁 당시 유엔주재 소련대사로서 정전협정을 처음 제안했다. 근엄한 동상 바로 건너편에는 시끌벅적한 상가가 있어 러시아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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