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청년칼럼=신명관] 필자가 일했던 파스타집은 2층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술을 같이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던 편이었다. 맨 왼쪽은 호프집 프랜차이즈가 치킨을 팔았고, 중간에는 간단한 안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맥주집 프랜차이즈로 메뉴에 치킨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20초를 걸어가면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문을 닫기는 했지만 개인 치킨집이 하나 더 있었다. 세 개 매장의 메뉴 중에 치즈와 감자튀김 등등도 겹친다는 사실이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왜냐면 건물의 뒤편으로 가면 음식점이 또 있었으니까. 치킨집. 닭강정집. 호프집으로.

한국의 음식점이 과포화가 되었다. 외식산업 종사자 200만명의 시대. 그건 다시 말하면 5천만명이라는 인구에서 약 4%가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소리가 된다. 이중 20세 미만을 제외하고, 60세 이상도 제외해보자. 퍼센테이지는 6.6%로 올라간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다른 지수를 가져와보자. ‘2018 외식산업경영 실태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식업체의 개수는 65만개다. 5천만으로 때려잡으면 인구 77명당 1개의 음식점이 있다고 보면 편하다. 1개의 음식점은 77명의 고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개인의 소득 중 삼분지 일이 외식으로 빠진다면 가능하겠다만, 학교 급식도 아니고 우리는 한 달에 똑같은 음식점을 다섯 번도 채 가지 않는다. 이만큼 과포화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구 1만명당 외식업체의 수가 125개다. 미국에 비해 6배가 많은 수치다.

이는 거품이라고도, 과열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소멸되는 것처럼, 언젠가 이 무식하게 규모가 오른 요식업계가 무서운 기세로 하향곡선을 칠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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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맛의 ‘평준화’ 자체가 불러오는 비극 

남자와 여자가 소개팅을 하는데 왜 굳이 비싼 음식점을 들어가야 하느냐-라는 소리가 있다. 이는 외국에서는 경우에 따라 통용되지 않는다. 유럽권의 길거리 음식들은 맛이 없다. 작은 음식점들도 맛이 없는 곳이 많다. 필자는 독일의 옥토페스트를 가봤고, 길거리 음식들을 먹은 뒤 군것질을 포기했다. 영국에서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0원 정도의 가격에 파스타를 먹었는데, ‘이렇게 좋은 식재료로 이런 소스가 탄생한다고?’라는 생각과 함께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정말 규모가 크고, 음식의 값이 비쌀수록 맛이 있는 곳을 찾기가 수월해지는 국가들이 있다.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데이트는, 진심으로 비싼 레스토랑을 가야 이뤄진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길거리 음식 내지 웬만한 음식점들은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는 걸 의미한다. 학원가, 시장가에 즐비한 닭꼬치와 핫바도 맛이 괜찮고, 푸드트럭에서 만들어내는 음식들도 대부분 밸런스가 잡혀있다. 연간 소비되는 닭만 10억마리인 이 나라에서 치킨집은 정말 모두 맛있다. 돈 3만원만 있으면 닭 한 마리와 맥주 500cc 두 잔,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먹을 수 있다. 한 블록 건너가면 중국집, 한 블록 건너가면 피자집이 있다. 모두 맛은 괜찮다. 분식집은 메뉴가 30개는 되어보이지만, 어떤 메뉴를 시켜도 맛없다고 남길 만한 퀄리티가 나오는 게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어딜 가도 먹을 만하니, 어딜 가도 상관이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치킨 집 5개중 한 개가 특별하게 맛있다면 자연스럽게 나머지는 도태되어야 하는데, 각 브랜드들마다 먹을 만하다 보니 수익이 분산된다. 힘들어지는 것은 소비자가 아닌 자영업자의 몫이다. 음식점의 최대 함정은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망하는 시스템이란 거다. 획기적인 맛을 개발 하던가 단가를 낮춰서 손님을 불러야 하는데, 이미 세상에 나올 맛이란 맛은 다 나와 버렸고, 안 그래도 적은 손님에 단가를 낮춘단 건 셔터를 내릴 생각을 하고 치는 배수의 진이 된다.

2. 준비되지 않았던 사람들

“요즘은 ‘뛰어난 맛’만으로는 치열한 창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입니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홈페이지에서 직접 말한 문구다. 매장은 맛과 서비스, 인테리어의 3종 세트를 모두 잡아야 살아남는다는 소리다.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고 생존의 최소조건이다) 찾지 않는 골목길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맛이 기가막히면 사람들이야 몰리지 않겠느냐-라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만, 장담할 수 없다. 맛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SNS에 올라가며, 인테리어가 별로면 인스타그램에 홍보도 되지 않으니까.

개인 매장을 운영해봤거나 동종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그나마 개인의 노하우를 살려서 창업을 하지만, 경력이 적거나 업종 변경의 경우에는 만만하지 않다. 전반적인 투자비용을 잡고, 상권 분석, 소비층 조사, 위생교육과 영업신고를 한 뒤 사업자등록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사이에 시설 공사도 들어가서 전기, 주방, 목공, 간판 모두 처리하는 것도 일이다.

인테리어 기업 쪽에 한꺼번에 문의하면 바가지를 쓰기가 쉽고, 막상 공사를 끝내놓았는데 동선이 불편하면 매장을 운영하면서 몸이 상한다. 오픈 이후에는 매일이 전쟁이다. 만들고자 하는 음식에 대한 밑준비를 하고, 운영과 마감을 담당해야 하며, 사람을 써야 하고 위생 감사에 걸리지 않게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 장사가 안 되면 준비했던 모든 음식들은 버려진다. 음식점 총 매출의 30~40%를 차지하는 게 원재료 값이다.

회사의 조직생활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 뒤 급여를 받는 것이고, 프리랜서는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해주고 보수를 받는 일이다. 나는 외식업 일에 비해 다른 직종이 편하지 않느냐는 얕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조직생활은 개인의 정체성이나 라이프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힘들며, 프리랜서는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힘드니까. 다만 그런 점들이 힘들어서 창업으로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건 좋은데, 창업이 가지고 있는 힘든 점들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온 경우도 너무 많아 말하는 것이다. 하루 매출이 나올 때마다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영업이다. 이곳도 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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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처음부터 끝까지, 프랜차이즈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프랜차이즈다. 모두 다 해주니까. 음식의 종류는 상관없으니 외식업 프랜차이즈 홈페이지 하나를 들어가보자. 어느 곳이던 간에 ‘창업비용’내지 ‘창업 절차’ 파트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시설공사의 모든 부분, 메뉴와 영업에 대한 교육까지 본사가 담당하고 있으니 개인에게 있어서 이만큼 편한 것은 없다. 가오픈을 한 뒤에는 본사에서 사람이 와서 교육까지 담당해준다.

음식의 준비도 쉬워진다. 치킨의 경우 염지가 된 닭이 트럭으로 배송되고, 피자의 경우 도우와 토핑이 제공된다. 패스트푸드는 이루 말할 것도 없고, 파스타, 떡볶이, 족발집도 본사에서 제공하는 재료들이 있다. 국내 닭발집 중 하나는 모든 메뉴를 ‘완제품’으로 진공포장한 뒤 매장에 보내준다. 말이 외식업이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팬에 가열한 뒤 내기만 하는 매장들이 있단 소리다. 가끔씩 필자는 생각을 한다. 필자가 일하는 곳도 기성품을 쓸 때가 적지 않은데, 프랜차이즈에서 지시한 대로 요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요리’를 한다고 생각을 할지.

마련되어있는 풀이다보니 너도나도 프랜차이즈에 뛰어든다.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거대한 대기업을 등에 지고 일정부분 이상 관리를 받는 게 부담감이 덜하니까. 다만 간과하고 있는 것은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가져가는 로열티와 유통과 관련해서 제재하는 사항들이 상당하단 사실이다. 로열티가 높거나, 혹은 ‘우리 기업의 원부자재를 써라’면서 재료 수급에 대한 갑질을 하는 경우에 매출에서 나가는 추가적인 비율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진다.

대박집이 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일을 하고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직장인과 비슷하다. 주말 영업. 공휴일도 영업. 휴가 없거나 적음이란 전제 하에.

4. 공정엔 있어도 음식엔 없는 특허권

요리연구가 백종원은 해물떡찜이란 브랜드를 만들어놓았을 때 주변에 자기와 같은 브랜드가 없다는 자신감으로 넉넉한 가격으로 팔았다. 그리고 해물떡짐의 유사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자 그때부터 유사브랜드가 접근할 수 없도록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그게 홍콩반점이었고, 짬뽕이 3500원이었다. 그가 유튜브에서 이 말을 한 이유는, 그에게 질문한 사람이 순댓국 경쟁업체 때문에 고민을 털어놔서다.

장사가 잘 된다 싶으면 그 근처에는 유사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가 이미 터를 잡고 있는데!’라는 소리는 먹히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막을 수 없다. 표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짜장면, 떡볶이, 잔치국수, 돼지갈비. 누가 원조랄 것도 없이 이미 오래전부터 먹어왔었던 음식이라 특허권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혹여 넣는 모든 재료들까지 모두 똑같다면 소송을 걸 수 있을지 몰라도, 고춧가루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더 들어가면 다르다고 우겨도 말이 된다. 짜파게티와 짜짜로니, 찰비빔면과 팔도비빔면, 너구리와 오동통면. 유사품이 나왔다는 뉴스는 봤지만 농심이 오뚜기에게 너구리를 두고, 팔도가 농심에게 비빔면을 두고 소송을 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지 않은가. 공정의 특허는 가능해도 레시피의 저작권은 없는 요식업계에서, 독창적 메뉴 개발을 했다손 치더라도 금세 생겨나는 유사 매장 덕분에 요리가 획일화되고 있다.

5. 덩달아 획일화되는 대중의 미각 

한국은 고질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너도 나도 모두 비슷한 맛들이다보니 이제 시대별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세지기 때문이다. 5년 즈음 전에 터진 ‘허니버터’의 열풍은 실로 어마무시했다. 감자칩으로 시작했던 게 치킨과 견과류, 피자와 떡, 심지어는 건어물까지 뻗었다. 그보다 더 전, ‘붉닭볶음면’으로 시작된 ‘불닭’의 열풍은 김밥과 떡볶이, 피자와 갈비까지 잠식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흑당 버블티가 붐을 일으키자 음료에만 들어갈 것 같던 달고 단 흑당이 샌드위치까지 들어갔고, ‘마라’의 매운맛은 아이스크림에까지 들어갔으니까.

‘단짠단짠’, ‘극강의 매운맛’, ‘미치게 단맛’등을 내세우며 팔리는 식품들 덕분에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것은 ‘미각의 퇴화’가 되었다.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애입맛’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났다. 정말 신선한 재료로 조미료 없이 정성들여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 간이 세지 않아도 맛있는데, 대중의 식탁 앞에 놓여져있는 것은 이제 보기에 그럴싸한 메뉴들과 소스로 뒤범벅된 음식들뿐이 되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2015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셰프’ 붐과 더불어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편성되었던 요리 프로그램들을 보고 나서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외식업계에 손을 뻗치는 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형마트의 식재료와 냉동식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대기업 브랜드의 소유물이었지만, 서로의 레시피를 공유하고 요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요리사들이 재조명을 받고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인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셰프들을 얼굴로 내세워 자기 브랜드의 식품을 팔기 시작했고, TV, SNS, 유튜브까지 음식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았다. 냉동만두와 라면, 파스타 소스뿐만이 아니라, 치킨을 넘어 갈비, 떡볶이, 아이스크림과 같은 단독 브랜드까지. 필자는 앞으로 10년 내로, 과연 대한민국에 외식업에서 프랜차이즈의 비율이 몇%까지 차지할 지가 걱정이다. 모두가 프랜차이즈를 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언젠가 이 손님이라는 배보다 음식점이라는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끝나는 순간,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신명관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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