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KBS의 이산가족 특별방송에 출연해 이산가족 상봉이 안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남쪽정부든 북쪽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불응과 비협조 때문으로 알고 있는 많은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문 대통령의 한국정부 책임론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는 일이 지난 18일 북한에서 나왔다.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의 글을 통해서였다. 이 글은 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여종업원 12명 귀순자 중 한 사람인 리지예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지춘애 씨가 쓴 것이다. 

지 씨는 '우리 딸들을 한시바삐 부모들의 품, 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내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언급하며 "남조선당국이 집단납치행위를 시인한 이상 우리 딸들을 하루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지씨는 "이제는 남조선당국이 '정착'이요, '신변안전'이요 하는 부당한 구실을 내대며 우리 딸들을 남조선에 붙잡아둘 아무런 이유도 없다"며 "남조선당국이 자식과 부모들을 갈라놓고 새로운 흩어진 가족을 만들어내면서 어떻게 '인도주의'와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지 씨가 내세운 한국정부의 책임의 근거는 인권위가 최근 내놓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들의 탈북 과정에 한국 정부의 위법·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일부 종업원이 그들을 인솔한 식당 지배인 허강일의 회유와 겁박에 의해 입국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외국 법률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지난 4일 발표한 방북 조사 결과 중간보고서에서 "이들이 기만에 의해 한국으로 강제이송 됐다"며 이 사건을 '납치 및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이 조사단의 주장은 북한을 방문해 탈북을 거부한 종업원들과 탈북 종업원 가족들을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객관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KBS ‘추석특별기획 2019 만남의 강은 흐른다’에 출연해 이산가족의 기억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인권위의 결론은 인솔자의 회유나 겁박은 있었을지 모르나 정부차원의 회유나 겁박의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공식 입장인 통일부의 판단도 이들이 자유의사에 의해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 

만에 하나 북측이 주장하듯 이 사건에 불법이 개재됐고, 귀순이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유엔과 같은 중립적인 기관을 통해 그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해 거주지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북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보내주는 것이 인도주의다. 

이들을 인솔해 온 허 씨가 약속이 틀리다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으므로 정부의 책임 유무도 살펴볼 필요는 있다. 국정원의 공작에 의해 이들이 자유의사에 반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라면 그런 공작이야말로 적폐청산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북한에선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고, 현재 한국 내 탈북민이 4만 명 가까이나 된다. 이들에 대한 뒷바라지가 소홀해 탈북민 모자가 굶어 죽는 사건까지 최근에 벌어졌다. 이런 판국에 공작까지 하면서 데려올 이유는 없다. 

이들을 북으로 보낼 경우 대남 흑색선전에 이용되고, 정보기관의 해외정보망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해도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가 국익에 더 보탬이 된다고 본다.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이 나자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 모두가 그런 것처럼 선전한 북한이다. 북한의 흑색선전은 내용이 어떠하든 우리가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탈북자들을 돌려보내게 될 경우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북측에 억류된 한국인 6명에 대한 송환 요구이다. 북측은 억류된 한국인이 북한의 법을 어긴 중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에서 적용되는 법이 얼마나 불법무도한지는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온 세계에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해 1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의 요구에 따라 억류했던 미국인 2명을 풀어줬지만, 남북 정상은 작년 이후 3차례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4차례나 만났음에도 6명의 송환은커녕 생사여부와 혐의 내용조차 오리무중이다. 

현 정부가 이들의 송환을 한번 요구한 적이 있으나, 북측이 식당종업원 송환을 들고 나온 이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대통령의 최대 책무는 자국민 보호다. 자국민이 억울하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데 정상끼리 백번 축배를 부딪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남북대화의 교착의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이 여종업원 사건을 이상가족상봉의 거부 이유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아무런 다툼의 여지가 없는 순수한 인도주의와 인륜에 관한 문제다. 대부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 이산가족의 시간을 다투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여종업원 귀순 사건을 의식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정부 책임을 거론했다면 매우 무책임하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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