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모스크바(Moscow)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푸슈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시와 시인을 바꾸어도 뜻은 일맥상통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소박하게 살자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이면 한번쯤 슬퍼하는 것도 좋은 일이며
한번쯤 노여워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어찌 우리가 성인군자의 태도로만 이 험난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르바뜨의 거리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푸슈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의 동상은 가장 인기가 많다. 그의 아내 나탈랴와 맞잡은 손은 사람들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아 반들반들 빛난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푸슈킨은 아내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 결투를 벌였고, 부상을 당하여 2일 후에 사망했다. 놀랍게도 그때 나이 38세(1799~1837.2.10)에 불과했는데, 더 놀랍게도 세계를 통틀어 그만큼 널리 알려진 시인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수많은 시와 소설들을 남겼을 것이고, 노벨문학상쯤은 너끈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운명이 거기까지인 것을!

아르바뜨 거리의 명소인 푸슈킨 생가 겸 박물관, 그리고 푸슈킨과 부인의 동상.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아- 빅토르 최!

한때 비틀즈의 존 레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으나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운의 사나이.
사망 날짜가 하필이면 우리의 광복절인 8월 15일.
너무도 짧은 28년의 생애 동안 소련을 뒤흔들었던 청년.
KGB의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를 당했던 그림과 노래의 천재.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는 씨앗을 뿌린 자유의 투사.
1990년 6월 24일,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록그룹 키노(KINO)의 공연에 10만 명의 청년들을 모은 저항의 상징.

빅토르 최(Tsoi Viktor, 1962.6.21.~1990.8.15)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그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에 깊이 남아 있다.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젊음의 거리’라는 아르바뜨 거리. 그곳에서도 가장 핫한 명소의 하나가 러시아의 고려인 로커 ‘빅토르 최(1962~1990) 추모벽’. 자유와 저항을 노래한 빅토르 최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낙서와 글 등이 잔뜩 쓰여 있다. Ⓒ김인철
1999년 발행된 빅토르 최 추모 우표. Ⓒ김인철

 

인생, 뭐 별거 있더냐

아르바뜨의 거리, 푸슈킨 동상 건너편에 있는
무엇하는 놈팡이인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건방진 태도로 우리를 꼬나본다.

왼쪽 옆구리에 둘둘 만 신문지(혹은 잡지)를 끼고 있는 품새로 보아
작가인 듯도 싶고 (푸슈킨인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출판사 편집자인 듯도 싶고
그저 평범한 아버지같기도 한데
표정만은 범상치 않다.

발밑에 꽃다발 한 묶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임은 분명하겠지만 굳이 그 이름을 묻지는 않았다.
이름을 알든 모르든
존경을 받을 사람이라면 계속 존경 받을 것이며
평범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서서 사람들을 꼬나보는 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소리치겠지.
“뭘 봐? 나는 그렇다 치고,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푸슈킨 생가 건너편에 서 있는 동상. 범상치 않은 표정이 눈길을 끈다 싶더니, 시인이자 작곡가 겸 가수로 러시아 음유시가의 개척자로 꼽히는 불라트 오쿠자바(1924~1997)의 동상이다. Ⓒ김인철
대도시답게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 들어선 모스크바 도심. 그리고 명소답게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물론 관광객들로 붐비는 아르바뜨 거리.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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