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청년칼럼=이하연]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눈길이 가는 게 생겼다. 다름 아닌 내 방 책장에 꽂힌 책들. 장르별로 분류해 놓지도 않았을뿐더러 꽂을 자리가 부족해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나의 소중한 책들. 정리된 꼬락서니를 보면 결코 믿기지 않겠지만 난 책장에 남아있는 책들을 아주 아낀다. 간직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여러 번 정독하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한 권 정도만 겨우 두 번 읽었을 뿐이다. 여태껏 나의 독서 습관은 그랬다. 한 번 읽으면 그게 끝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 11년 전부터 독서습관은 꾸준히 변했다. 한 권을 다 읽기 전까지 다른 책엔 손도 대지 않았을 때도, 여러 권_6권까지 읽어봤다_을 동시에 섭렵했을 때도 있었다. 아무리 지루해도 기필코 완독하리라 다짐했던 적도 있었고, 한 페이지만 읽고 버린 책들도 허다하다. 취향 역시 계속 바뀌었다. 아니 바뀌었다기보다 추가(?)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확실히 취향이 넓어졌다. 역사책으로 독서를 시작했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지금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읽는데, 가끔은 육아서적도 읽을 정도다. 심지어는 전자책 종이책 너 나 할 것 없이 질감도 가리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순 없는 경력이지만 아직까지 거쳐보지 않는 습관 중 하나는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다.

무엇이 더 좋은 습관인지엔 관심 없다. 때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만 좇다 보면 독서 습관 자체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요즘은 가진 책들을 여러 번 읽고 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내 방 한 편에 꽂힌 책들이 나를 봐달라고, 만져달라고 울부짖고 있는 것 같다―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그렇게 한 권 한 권 눈길을 주다 보니 벌써 꽤 많은 책들을 두 번 읽게 됐다. 개중엔 세 번 읽은 것도 있다. 헌책에 눈이 멀어 새 책을 홀대했을 정도로 책장 앞을 오래도록 서성이는 중이다. 갑자기 나는 왜 이럴까.

Ⓒ픽사베이

재밌으니까. 너무 좋으니까. 나는 책에 꽤 관대한 편인데, 어지간해서 재미없다는 말은 안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다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좋은 건 좋은 거다. 고작 두 번 읽었을 뿐인데 어떻게 처음보다 더 좋을 수 있지. 결이 다른 좋음인데, 첫 만남은 설레고 낯설어서 좋고 두 번째 만남은 설레고 낯선데 왠지 모를 익숙함이 끼어들어서 좋다. 첫 만남 때 느꼈던 설렘과 두 번째 만남 때 느낀 설렘의 지점이 다르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 때엔 두 지점이 모두 느껴진다. 흠뻑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는 맛이 무서운 거라더니, 독서에도 이런 맛이 있을 줄이야.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추천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새로 알게 된 독서법이 지금의 나와 잘 맞는구나, 뭐 여기까지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따위의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이니까 그 습관을 내 생활로 들여올 수 있었던 거다. 뭐든 억지로 하면 탈 난다. 지금은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를 다시 읽는 중인데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자꾸 눈물이 고여서 큰일이다. 에피소드부터 결말까지 머리는 알고 있는데 눈물은 모르는 모양인지 줄기차게 눈치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눈물이 많아진 건지 두 번 읽어서 더 슬픈 건지.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