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라 부르며 멸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비하하는, 심한 욕인 화냥년이라는 말의 어원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근거는 없다. 병자호란 당시에 환향녀라는 말이 쓰였다는 역사적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다. 환향녀라는 말이 실제로 당시에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성들을 조선 사회가 반갑게 맞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사대부가에서는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자들을 쫓아내거나, 아녀자들이 친정으로 되돌아갔다가 친정에서도 쫓겨나는 일이 계속 발생했다. 이유는 정조를 잃었으므로 사대부 집안에서 조상들의 제사를 모시게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았을 경우 누구의 자손인지 알 수 없는 아이를 자손으로 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을 주장했던 최명길은 일명 환향녀들의 이혼을 반대하고 그들을 비하하는 것 역시 금지할 것을 상소하였다. 그것은 신하들이 정사를 잘못 보필하여 부녀자들이 끌려간 것이지, 악의를 품고 간통한 것은 아니라며 이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많은 부녀자들이 청나라로 끌려가 겁탈당하거나, 청나라 사람의 아이를 낳고 돌아왔다. 당시 조선사회는 이들에게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따돌림시킨다. 무능한 나라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모욕과 고초를 겪은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지는 못할망정, 피해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되돌리고 앞장서서 비난까지 한 것이다.

Ⓒ픽사베이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시각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첫 번째 시각은, 위안부라는 존재는 있었지만 그것은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민간업자들이 위안부를 모집했고 큰돈을 벌기위해 여성들이 자원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논란이 된 연세대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매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광복절 즈음에 비슷한 망언들이 하나 둘 논란이 되다가 잠잠해지는 것 같더니 또 다시 터져나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상식 밖의 발언들이 계속 쏟아져나온다. 이러한 시각의 문제는 문제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린다는 데에 있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한 일에 국가나 사회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은 위안부 여성들이 설령 일본군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수치스러운 일을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다. 성범죄 피해는 안타깝고 슬프고 화나는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비난과 법적 책임은 가해자를 향해야 한다. 청나라 병사에게, 일본군에게, 성적으로 짓밟힌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가슴이 푹 파인 옷을 입었다고, 밤늦게 술에 취한 채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이 잘못이고 끔찍한 성범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가해자보다 피해자 행실을 탓하는 일이 많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피해 입은 사실을 밝히는 것도 쉬쉬해왔다.

병자호란 당시의 여성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은 끔찍한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이지 부끄러운 존재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가, 사회가, 가슴 깊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놓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부끄러운 짓은 이제 좀 그만하자. 국가는, 사회는, 그리고 일부 염치없는 사람들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과해야 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의 억울한 분노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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