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바르샤바(Warsaw)2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와지엔키(Łazienki) 공원 혹은 쇼팽공원이라 한다.
공원에 거대하고 멋진 쇼팽 동상이 있기 때문이고, 쇼팽음악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와지엔키는 ‘목욕탕’이라는 뜻이며,
사냥꾼들이 사냥을 마치고 이곳에 와서 목욕을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엄청나게 넓고 미로가 많아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두세 명이 간다면 절대 흩어지지 말아야 하고
가이드를 따라 간다면 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름드리나무들과 넓은 잔디, 공작새, 조각품, 유람선, 작은 궁전, 장미숲에
정신을 빼앗기면 길을 잃고 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넓다는 것과
웅장한 쇼팽 동상이 있다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번쯤 볼 필요는 있다. 

이렇게 넓은 공원을
만들고, 가꾸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동, 돈이 필요한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에 있는 쇼팽의 동상.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나, 20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난 후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슬픈 ‘피아노의 시인’. 현재의 동상도 히틀러가 2차대전 도중 폭탄을 만들겠다며 녹여버린 것을 전후 다시 세운 것이다. 머리 위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산발이 되어 흩날리는 모습이다. Ⓒ김인철
Ⓒ김인철

너는 나를 아느냐?

당연히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Marszalek Jozef Pilsudski 라는 낯선 이름의 이 사내는
와지엔키 공원 입구에 버티고 있는데 위압적으로 관광객들을 노려본다.
누군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주 나중에 찾아보니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폴란드 대통령을 지낸
필수드스키 원수(Marshal Joseph Pilsudski)란다. 

단지 대통령이라 해서 동상을 세웠을 리는 없고
무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일 텐데...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폴란드의 역사뿐만 아니라 180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년 동안 유럽의 역사는 복잡하기 그지없어 설명을 하자면 책 2권으로도 모자란다. 그러므로 그냥 필수드스키라는 상당히 묘한 이름의 사내가 있었다는 것, 그의 동상이 공원 앞에 세워져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렇다 해서
“그를 무시하거나 폴란드 역사를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목욕탕’이라는 뜻의 와지엔키 공원. 사냥을 마친 사냥꾼들이 목욕을 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법 큰 연못을 갖춘 작은 궁전과 아름드리나무, 넓은 잔디, 공작새 등 도심 공원치고는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숲속의 슬픈 음악가

뭐 이름이야 숱하게 들어보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무엇인지, 유명한 곡은 무엇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쇼팽의 본명이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이고
폴란드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알았는데,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발라드 제1번~제4번, 마주르카 제1번~제51번, 녹턴 제1번~제20번, 폴로네이즈 제1번~제7번 등등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와지엔키 공원(쇼팽공원)에 가면 거대하고 아름다운 쇼팽 동상이 있다.
사람들은 이 그로테스크하고 숙연한 동상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지만...
쇼팽이 19살에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나라가 분열되어 사라졌고,
학교에서 러시아어나 독일어를 강제로 배웠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간 이후 39살에 죽을 때까지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음악은 슬프고 암울한 시대를 버티는 희망이었으나 금지곡이 되었고,
1910년에 탄생 100년을 맞아 동상을 세우려 했으나 조각가 시마노프스키는 자살하고.
1926년 우여곡절 끝에 동상을 세웠으나 독일 나치에 의해 폭파되고,
모든 복제품 동상은 철거되어 폭탄을 만드는 데 쓰였고,
2차대전이 끝난 뒤 또 한번의 우여곡절 끝에 동상을 원형 그대로 다시 세웠고....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쇼팽 머리 위의 나무는 버드나무다. 바람이 불어 푸른 가지가 산발되어 흩날리는 모습이다. 마치 폴란드의 슬픈 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검은 대리석 벤치는 공원안내도이며,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텔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르샤바 시내. 언덕 하나 없는 평지에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바르샤바의 85%가 파괴돼 다시 건설했다.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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