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청년칼럼=방제일] 몇 해 전 일이다. 엄마가 주말에 서울로 올라와 종로를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외부 일정이 있어 서둘러 종로 세운상가에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 중이었다. 을지로 역에 내려 좀 걷자 횡단보도 맞은편 세운상가가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가 가방을 슬그머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설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틀리지 않았다. 엄마는 지갑을 꺼내더니 내 주머니에 오만원을 넣었다.

나는 분명 회사에 다니고 있고 월급도 받는다. 박봉이다. 박봉인 건 시대가 어렵고 취업이 힘들어서 이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다. 가장 적게 일하고 꿈을 위해 자유로운 직장을 찾은 것이다. 그런 내게 대학 시절에는 잘 주지도 않았던 현금 오만원을 건넨다. 문득 내 삶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픽사베이

서른이 넘은 직장인, 틈틈이 칼럼을 써서 돈을 받는 프리랜서, 소설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 누군가의 글들을 편집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에디터, 파워 블로거를 꿈꾸는 푸어 블로거. 그 모든 수식어와 직함이 그 오만원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었다. 그 돈을 받으면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것들이 너무 보잘 것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괜히 핀잔을 줬다. 내가 아무리 박봉에 이러고 살지만, 대학원도 혼자 힘으로 마쳤고 대학 다닐 때 용돈 한 번 달란 적 없지 않느냐고. 나 이 돈 받을 정도로 힘들지도 않다고. 그리고 엄마는 모르겠지만 결코 돈에 허덕이며 살지 않는다고.

사실이었다. 고작 오만원, 내가 술 한번 마실 때 취해서 ‘오늘은 내가 쏜다’하며 쿨하게 쓰는 비용, 다음 날 아침 누적된 신용카드 대금을 보면서 카드를 잘라버릴까 손가락을 잘라버릴까 고민하는 비용,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 짓을 반복하는 비용.

그 꼬깃꼬깃한 썩은 배추 이파리 한 잎에 이리도 내 삶이 헛헛하다니. 엄마는 “그러냐, 아들. 엄마는 오랜만에 아들 용돈 주려고 했지”라고 말하며 미안함을 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엄마는 여전히 1년에 한두 번 서울로 올라오신다. 서울로 올라와 아들이 밥은 잘 먹고 사는지, 애인은 있는지, 삶은 어떤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 묻는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종로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종로에 갈 때면 언제나 엄마랑 인사동에 들려 다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엄마는 동서울터미널로 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나는 고향에 내려가는 엄마에게 그 썩은 배추 이파리 한 잎 하나 제대로 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내 마음에 걸려 다음번에는 용돈을 드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는 너 건강하게 잘 살면 그만이지 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면 내게 넌지시 흘겨 말한다.

이제 그 되지도 않는 글은 그만 쓰고 제대로 된 일을 하면 안 되냐고. 그 말이 내 마음 한편에 훅하고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짤막하게 엄마에게 긍정의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 뿐이다.

나의 글을 쓴다, 혹은 타인의 글을 편집한다.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그게 참 슬프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은 그것이 내 밥벌이이자 내 삶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내 꿈에 물을 주는 자양분이다. 이것마저 없다면 정말로 엄마가 주는 오만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은 내게 있어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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