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논객칼럼=김선구] 미국을 거대한 용광로라 불러왔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밀려들고 그들의 인종,언어,문화,종교가 다르지만 미국이라는 용광로에서 녹여지고 미국식으로 만들어져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표현하던 용어이다.

미국식 정치제도도 성숙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모형으로 꼽아왔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수없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세 기둥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을 통해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란 민주주의 원칙에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그러나 미국식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들이 최근 들려오기 시작한다.

소득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을 두고 민주/공화 양당 간은 물론, 국민여론도 양극화가 심화되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송토론에서도 주제가 민감한 정치 경제 사회 이슈일 경우 상대방의 말을 찬찬히 듣는 경우는 보기 어렵고 상대방이 말하는데 끼어들어 자기주장을 큰 소리로 펴기 일쑤다. 각기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결과로 이어져 의견이 수렴되거나 좁혀지는 토론을 보기 어렵다.

Ⓒ픽사베이

지난 9월 23일 미 CNN 방송 보도를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미국 스탠포드대 부설 ‘숙의하는 민주주의 연구소(Center for Deliberative Democracy)’가 주관하는 행사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9월 19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렸다 한다.

어찌 보면 미국보다도 더 국론이 분열되어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런 시도가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보려 한다.

‘같은 방에 모인 미국(America in one Room)’이란 실험적인 행사가 기획된 바탕에는 미국 민주주의제도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자각에서다. 의회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최저로 떨어진 가운데 상대 정당과 함께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능력도 사상 최저란 인식이 팽배하다.

양극화에 대해 많은 말과 글들이 난무하지만 미국 사람은 정치집단만큼 심하게 나뉜 게 아니라는 가설이 이 실험의 전제가 되고 있다.

방송과 SNS는 각 개인들이 주요 이슈들에 대해 갖고 있던 처음 관점만 강화시켜 분열을 키운다는 판단에서 균형잡힌 정보를 주고 마음을 열고 토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민 여론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뀔 거라는 믿음이 이 실험의 목적이기도 하다.

모집단인 미국 전 유권자를 대표하는 표본추출은 시카고 대학 연구소에서 소득,연령,성,정당선호,종교,교육,인종을 고려하여 526명을 무작위 방식으로 뽑았다.

참가자들은 민감한 이슈인 건강보험,외교정책,이민,환경,경제,세제등에 대해 무당파적인 각계전문가들로부터 4일간 강의를 듣고 13명에서 15명으로 나누어진 소그룹에 속해 토의에 들어갔다 한다.

소그룹 토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토론의 사회를 맡아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 상호존중을 고무시키고 상호 비방이나 인신공격을 피하도록 하였다 한다.

참가자들은 이번 실험에 참가하기전 각종 이슈에 대해 여론조사에 응했으며 이 실험이 끝난 후 의견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10월 2일 경 발표될 예정이라 한다.

이번 실험을 주관하는 측에서는 가짜뉴스나 정보를 제거한 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건설적인 대면 숙의과정을 거친 후 평소에 지녔던 생각이 바뀌는지와, 왜 그리고 얼마나 바뀌는지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한 대의정치가 채택되나 대의원을 뽑고 지켜보는데 필요한 정보가 갈수록 왜곡된다.

시장경제의 핵심에 자본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는데 핵심은 신뢰할 수 있는 재무정보와 회사주요변동사항에 대한 즉시적이고 솔직한 공시다.분식을 통해 재무정보를 조작하거나 불성실 공시를 하는 회사를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가 자본시장의 성패가 달려서이다.

어찌 보면 자본시장보다 더 중요한 선거에 필요한 정보를 유권자들이 올바로 알고 투표하게 하는 건 더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왜곡된 정보로 국론이 크게 분열된 상황이 비단 미국만은 아닐텐데 우리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서두를 때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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