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난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거듭난 시기. 20대의 서막은 나를 설레게 했다.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고, 술잔을 기울일 자격이 생겼다. 족쇄가 풀린 기분이랄까? 청소년기까지 나를 구속하던 제약이 하나둘씩 허물어지면서 나는 더욱 자유롭게 움직였다. 더 이상 어리지 않다고, 나름 어른이라고 어깨에 힘주던 지난 날 나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웃음이 난다.

10대에서 20대가 되면서 여러 가지 기분 좋은 변화를 체험했지만, 언짢은 부분과 마주하기도 했다. 바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을 놓는 것이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된 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한두 살 많은 형, 누나도, 아버지, 어머니뻘 되시는 분 역시 말끝에 ‘요’를 붙이고는 했다. 기분이 좋았다. 나를 존중해주는 느낌이었다. 스무 살이라서, 성인이라서 기뻤다.

하지만 이제 겨우 스무 살. 갓 성인이 된 터라 사실상 사회에서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었다. 나에게 존댓말을 쓰던 사람들은 나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은근슬쩍 반말로 갈아타고는 했다. 말을 편하게 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허락을 구하고 반말을 하든 그렇지 않든, 듣기 좋았던 존댓말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곧바로 반말이 들려오는 게 나의 일상 패턴이었다.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이였던 셈이다.

Ⓒ픽사베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반말하는 것, 즉, 말을 놓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매우 정상적이다. 하지만 나는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현상이 지속되기를 원했다. 연장자가 나에게 반말 대신 존댓말을 계속 써주기를 바랐다. 단순히 말끝에 ‘요’가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요’가 사라짐과 동시에 돌변하는 일부 사람들의 말투와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

물건 사러 간 매장에서, 알바 하러 간 일터에서, 그 밖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초기에는 그들 모두 나를 어른 대우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어른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존댓말을 쓴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말이 시작되고 나서 그들의 눈빛은 변했다. 말투와 행동도 마찬가지. 말끝에 ‘요’가 빠지면서 사람들의 언성은 높아졌다. 짧아진 말이 허전해 성량으로 대신 채우려 했던 걸까? 이 뿐만이 아니다. 말끝에 ‘요’가 빠진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대답은 점점 서술형에서 단답형으로 바뀌어갔다. 나중에는 아예 입을 열지 않고 손가락만 움직였다.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는 수고를 보여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상대에게 반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이는 존댓말을 사용하던 초기의 말투와 태도는 가식이었다는 방증이다.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보였던 그들의 미소... 활짝 웃는 마스크 안에 감춰져있던 진짜 표정은 어떤 모습이었을 지, 속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말 놓아도 되지?”라는 말을 흔히 접한다. 그런데 이 말은 모순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놓아도 되냐고 묻는 물음 자체가 이미 말을 놓은 상태다.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질문이 아닌, “나 이제 말 놓을 테니까 그리 알아라!”라고 암묵적으로 건네는 통보인 셈이다.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반말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다. ‘요’가 사라지면서 태도가 변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렇다. 반말을 하면서도 충분히 다정할 수 있을 텐데.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다정하게만 말하면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 텐데. 그럼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일부 사람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않는지 의문이다.

존댓말을 쓸 때나, 반말을 쓸 때나 태도가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니 그보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한결같은 사람일까?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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