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바르샤바(Warsaw)3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길가에 너무 흔히 굴러다니기 때문에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거나 적어도 인식되는 일이 없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는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고 일깨워주면 크게 놀란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수천 수만 개나 돌아다니지만 발견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1925~27년 발간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제1권 ‘민족주의적 세계관’의 11장 ‘민족과 인종’에 실린 글이다.
매우 멋진 말이고, 옳은 말이다. 이 잘못된 옳음에 기초하여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일으켰고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그때 희생된 유대인들의 추모비가 베를린에 있다.
밋밋한 사각형의 대리석을 수백 개 세워놓은 추모비인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십자가가 된다.
희생된 죄없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될까?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이 말은 여러 경우에 쓰이는데, 그 처음은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이 했던 맹세라 한다. 그들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인들을 용서는 했지만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 앞에서 이 맹세와 교훈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리라.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비’. 모두 2,711개의 검은 색 ‘석비(石碑) 건축’을 통해 2차대전 시절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숨진 유대인들을 추모한다. 폭 0.95m, 길이 2.38m 높이 0.2m~4.8m의 다양한 석비가 끝없이 펼쳐지면서, 관람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건축 체험을 제공한다. 기둥 사이의 간격은 폭과 같이 95cm로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해 2005년 제막됐다. Ⓒ김인철
Ⓒ김인철

꽃 한 송이로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언정...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정확한 숫자는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최소 400만 ~ 최대 600만.
적어도 400만 개 이상의 우주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졌으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다. 

그 앞에 놓인 꽃 한 묶음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언정
꽃을 놓을 수밖에 없는,
살아남은 자들을 용서하시길.... 

* 1976년 3월에 발행된 한국어판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과 추모관 사진. 그 앞에 놓인 꽃은 3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게토 영웅 기념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저항하다 희생된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구)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브란트 총리의 그 진정성이 폴란드인들의 오랜 원한을 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인철
Ⓒ김인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

“나는 노동자로서 철로를 놓았을 뿐입니다.”
“나는 단지 가스 밸브를 열었을 뿐입니다.”
“나는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수색했을 뿐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죄가 없음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6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히틀러 혼자 죽였다는 말인가?

25년 후, 한 사내가 그 잘못을 모두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다.
서독의 4대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본명은 Herbert Ernst Karl Frahm, 1913~1992)이다.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뱌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헌화를 하던 브란트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참다운 용기였으며, 화해를 향한 위대한 행동이었다. 

독일은 25년 만에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일본은 75년이 지난 2019년까지 그들이 침략하고 학살한 아시아 어느 국가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으며, 전쟁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를 잘 대비해서 보여준다. 

일본의 총리 혹은 왕(천황)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무릎을 꿇는 날이
진정한 아시아의 평화가 정착되는 날이 될 것이겠지만....
과연 그날이 올까?

 

 

1976년 3월에 발행된 한국어판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그리고 게토 영웅 기념비 앞에 놓인 꽃 한 송이.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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