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폭력은 꼭 폭력으로 보여야 할까. 몇 해 전부터 <도가니>, <한공주>, <미쓰백>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해왔다. 민감한 실제 사건이나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 때 조심스러웠다. 영화가 해당 사건의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실제 사건의 문제점이 담긴 영상을 통해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앞서 말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늘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저게 진짜일까? 정말로 저런 상황에서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걸까. 이 사건이 영화화됨으로써 과연 사회제도의 부재, 불안정한 안전장치가 개선될 수 있을까. 그냥 잠깐 뜨거운 이슈가 되고 만 건 아닐까.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을 영화 장면에서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문제의 심각성, 참담한 정도를 알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이때 느끼는 불편하다는 감정이 어린아이, 미성년자 등에게 행해지는 잔혹한 폭력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픽사베이

몇몇 사람들은 <미쓰백>에서 어린아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맨 처음 <미쓰백>을 볼 때는 별로 잔인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실제 폭력 사건에서는 이보다 더한 잔혹성이 있을 게 분명하다고 여겼고 관객이 어느 정도 인지하기 위해서는 보여줘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노출은 관객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유년기를 보냈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런 관객이라면 영화 속 잠깐의 폭력 장면에도 큰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는 폭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올바른 건지 고민하게 됐다. 영화의 폭력 장면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게 이상적인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며칠 전 5살 아이가 새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니 과연 폭력의 표현법을 고민하는 게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폭력을 사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만들어야 그 심각성을 더 잘 알리고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피력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영상으로도 충분히 참담한 감정을 일으켰던 장면들이 또 다시 현실에서 더 비극적인 결말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하다. 이와 같은 아동폭력, 학대를 다룬 영화는 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에서 그려지곤 했다. 이젠 주위 목격자, 사회복지사나 경찰관 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피해자는 덜 상처받고, 가해자는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제3자인 누군가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이상적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의 무고한 죽음과 피해는 없길 바라며 손발이 묶인 채 고통 속에 잠든 한 어린 아이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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