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 칼럼]

볼수록 흐뭇하다. 바라만 보아도 글 쓰고 싶은 의욕이 물드는 가을나무처럼 머리와 온몸을 젖게 한다. 집안 내부를 향하는 게 아니라 창 앞에 와 있는 바깥과 세상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지금, 내가 했지만 이렇게 스스로가 장하고 대견할 수가 없다.

거의 하루 온종일을 초인적인 힘으로 이뤄낸 역사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끌거나 밀고 들어 올렸던 어떤 것도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무겁고 단단했다. 용기와 의욕만으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온갖 공간과 각도, 무게와 거기에 대응할 내 힘을 대입했다. 그냥 보아도 내 키보다 길고 짐작이지만 내 몸무게 두 배는 넘을 법한 상판은 그렇게 들어 내려졌고, 밀렸고, 다시 들어 올려졌다. 바닥에 이불을 깔아 밀고 나오는 동안은 몇 번이나 삐끗하여, 휘청거리는 바람에 압사할 뻔한 위기도 수차례 맞았다. 노동의 땀이 아니라 긴장과 두려움의 땀을 원도 없이 쏟아낸 하루였다.

그리고 드디어 해냈다. 거실 통유리 창 앞에 떡하니 자리 잡은 아들의 책상!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해 큰마음 먹고 크고 탄탄한 원목으로 바꿔준 책상이다. 아들은 작년 결혼해 집을 떠날 때까지 12년을 그 책상에서 많은 걸 이뤄냈다.

©픽사베이

한여름 녹음보다 짙은 가을 고요가 아들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숨길을 통하여 한꺼번에 들어선다. 서재 방에 있는 책상에서는 상상도 못 할 신세계다. 선한 미소를 닮은 가을 햇살이 청량하게 달군 아파트 주차장도 한눈에 보인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중인 할아버지의 느린 걸음을 따라가며 어느새 평화를 줍고 있는 내 눈길.

아들이 결혼 후 신혼여행을 떠난 동안 분당 신혼집으로 아들의 살림을 실어 나른 후 지금까지 나는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아들 방에서 오래 머물곤 했다. 아들 침대에 누워도 보고 아들 책상에 앉아 남기고 간 책이며 문구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냈다.

아들의 책상을 거실로 옮겨 이제 거기서 글을 쓰자!

벽 안에 고여 있는 공기를 마시며 고여 있는 마음으로 벽을 바라보고 쓰는 글이 아니라, 하늘과 바람결이 보이는 거실 창 앞에서 열려 있는 공기를 마시며 열려 있는 글을 쓰자! 엄마 글의 최애 독자이며, 가장 신랄한 비평가이자, 지구가 사라져도 엄마의 넘버원 응원군인 아들. 아들이 수년 동안 주문했던 것도 엄마의 웃음과 엄마의 기쁨, 엄마 글의 비상, 아니던가!

날이 저문다. 아들의 스탠드를 밝힌 아들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마시는 커피가 어느 성지에서 마신 물맛처럼 싱싱하게 몸 안을 돈다.

아들의 응원이 환하게 켜진 노트북 화면과 함께 들려온다. 나는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피니언타임스= 서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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