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오피니언타임스=문예찬] 어느 순간부터 우리사회에 갑(甲)질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상이 먼저 존재하고 그 대상을 표현할 이름이 나중에 생겨난다는 진리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갑질은 단순히 최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2017년 4월 14일 인천 중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41)의 ‘피자 인생’은 고달프기만 했다. 유서는 없었지만 경찰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A씨는 약 1년 전 가맹 피자프랜차이즈를 운영할 때까지만 해도 가맹점주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점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본사의 부당함에 앞장서서 맞서왔다. 하지만 A씨는 가맹점을 운영하던 당시 쌓인 빚에 발목을 잡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가맹점을 운영할 당시 A씨는 본사의 무리한 비용전가 및 요구에 맞서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시중가보다 비싼 식자재, 지나친 할인행사 부담 등 점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은 무거웠다. ‘가맹점 매출액의 4%’를 광고비로 냈지만 어디에 쓰였는지 알 길이 없는 점주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A씨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본사의 갑질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픽사베이

“근년에 이르러서는 겸병이 더욱 심해져...(중략)...1무(畝)의 주인이 대여섯 명을 넘기기도 하며 1년에 가져가는 조(租)가 여덟아홉 차례에 이르기도 합니다. 위로는 어분(御分)으로부터 종실(宗室)·공신(功臣)·조종의 문무양반의 토지까지 차지했으며 나아가 외역(外役)·진(津)·역(驛)·원(院)·관(館)의 토지와 남들이 자손대대로 심은 뽕나무와 지어둔 집까지도 모조리 빼앗아 차지해 버리니 불쌍하고 죄 없는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유랑하여 고랑과 골짜기를 메우고 있습니다.”

위의 상소문은 고려후기 농장의 폐해에 대해 대사헌 조준이 우왕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고려 후기 농장은 권세가들에 의해 형성된 대토지를 말한다. 권세가들은 어떻게 농장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을까? 그들은 농장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갑질을 한 것이다.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이용해 농민들의 토지를 탈점(奪占)하기도 하였고, 노비들을 활용해 척박한 땅을 개간(開墾)하기도 하였다.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토지인 사전(賜田)을 이용하기도 했으며, 고리대금업인 장리(長利), 토지를 사고파는 매득(買得),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토지를 헌납받는 시납(施納)을 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탈점과 개간에 의한 방법이었다. 농장은 그 크기 또한 엄청났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권세가들의 농장이 “산천으로 표(標)를 하였다”, “주군(州郡)에 걸쳐 있다”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형성된 농장은 노비 ·전호(佃戶) 등에 의하여 경작되었다. 고려말은 몽골의 침입, 왜구의 약탈 등으로 인해 조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권세가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농장의 전호를 수탈했다. 그리고 이러한 농민의 수탈은 고려를 망하게 한 경제적 요인이었다. 하지만 고려 말 권세가들은 이러한 농민들의 고통과 사회적 혼란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농장은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국가에 의해 몰수 되어갔다.

이러한 농장과 농장을 경작하는 노비, 전호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우리시대의 프랜차이즈가 떠오른다. 생계가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사업은 남는 것이 거의 없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피자 가맹점을 오픈한 A씨는 본점의 요구를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시중가보다 비싼 식자재를 구매해야 하고, 지나친 할인행사 부담도 져야 한다. 가맹점 매출액의 4%를 광고비로 본사에 지급해야 한다. A씨도 이러한 프랜차이즈 본사의 과도한 요구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에서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널리 보아서 옛일을 거울삼아 오늘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고려의 농장을 통해 대기업의 갑질이 얼마나 그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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