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오피니언타임스=박정선] 나는 가을이 오면 슬퍼진다. 가을 특유의 공기냄새 때문인데 일종의 트라우마랄까. 여하튼 가슴이 쿵쾅거리고 이따금씩 호흡이 가파른 것을 느낀다. 지난해 헤어진 연인때문인가. 엉덩이까지 오는 연베이지 컬러의 트렌치코트를 그는 즐겨 입었다. 그때 흩날렸던 따뜻한 우드머스크향 때문인지 나에게 가을은 유난히도 차갑다.

냄새란 본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하고, 또 그것이 주는 이야기 때문에 가치가 커지기도 한다. 인간이 쓰는 감각 중에 유일하게 탄성적인 기능을 하는 게 후각이 아닐까 싶다. 후세포에 흡착된 냄새 분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도 하고, 그것이 대뇌로 이동하면서 온갖 추억덩이를 살찌우는 과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누군가의 가슴 속에 ‘쿵’ 내려앉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을만 되면 옷깃을 더 단단히 여미게 되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감상만 좇는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바쁜 현대에서 ‘인정받는’ 감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교에서 1등만 하는 맏이는 시각이나 청각 쯤으로 여길 수 있다. 말 안듣는 가수 지망생 막내 아들은 단연 ‘후각’이다. 슬프지만 우리는 모두 경쟁의 바다에 내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좋은 결혼에 ‘골인’해야 하는 무한 엘리트코스에서 ‘후각’은 인정받지 못하는 막내아들 같은 존재이다. 진짜 막내아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려나. 오해는 없길 바란다.

Ⓒ픽사베이

후각의 소환

퇴근 후 서점에 들러서 갓 인쇄된 베스트셀러 책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단지 시각적인 정보만을 얻기보단 그 책에서 느껴지는 ‘여유’를 맡아본 적이 있는 지 말이다. 가끔은 활자가 주는 위로보다 그 책에서 나는 잉크냄새가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 풀던 수학문제집 냄새와 닮았다는 이유로 어릴 적 따뜻했던 기억이 순식간에 불려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오감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는 외부 자극 속에서 후각은 ‘멈춤’을 선사해 준다. 풍성한 기억은 나를 위로해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토닥토닥’의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생각보다 냄새가 위대한 이유이다. 시각은 장면을 기억하고 후각은 시간을 기억한다. 언젠가 가봤던 수목원의 풀냄새, 친구네 거실에 은은하던 아로마 향초, 사랑하던 그 사람과 마신 허브티 같은 것들. 그 모든 시간들은 냄새로 저장되고 냄새로 다시 불려 나온다.

냄새테라피

언젠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세제코너 사이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은 적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쓰시던 섬유유연제 향이다. 우리 집 수건에서 배어나는 포근한 냄새를 어린 나는 좋아했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늘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는 엄마. 그리고 불어오는 미풍. 막 세탁된 빨래는 가을바람에 휘날리며 부드러운 냄새를 풍겨왔다. 목화솜 같은 질감의 냄새는 엄마와 참 많이 닮았다. 냄새는 기억이 되고, 기억은 다시 냄새로 태어난다. 실바람같은 냄새 분자가 기억의 저편을 단숨에 불러오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 날의 기억은 서른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한 위로가 된다.

풍성하게 산다는 것

오감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은 몇 가지 예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다. 감각적인 기능들이 더 이상 무뎌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에 고립된 일상이 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이사를 했다. 파란 하늘이 바로 보이는 창이 큰 집으로 말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도심에서 바다 냄새를 느껴본다. 서울 한복판에서 낯선 프랑스 해안을 그려 보기도 한다. 그러자 알랭드롱이 나온 1969년작 영화 ‘La Piscine'의 선명한 하늘이 나의 창가에 투영된다. 나는 그렇게 나를 위한 냄새를 즐긴다. 당신의 창가에는 어떤 냄새가 맴도는가.

냄새는 위대하다. 어떤 냄새에 어떤 에피소드를 품고 있을 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번 주말 가까운 공원이라도 나가보는 건 어떤가. 가는 길목에 핀 꽃들,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 이 모든 전경은 냄새를 통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일상에서 따뜻한 위로로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박 정 선  

   - 별것 아닌 것에서 별것을 찾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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